현대 금융투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해리 마코위츠다. 25세이던 1952년 발표한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랜 투자 격언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40여 년 뒤인 1990년에야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지만, 그의 이론은 70여 년간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의 포트폴리오 구축, 그리고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금융상품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새뮤얼슨은 “월스트리트는 마코위츠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했을 정도다.새삼 마코위츠를 떠올린 것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때문이다. 작년 11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국민연금이 처음 해외에 투자할 때는 개인의 해외 투자가 사실상 막혀 있었지만, 지금은 서학개미가 돈을 해외로 많이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나라 전체의 최적 포트폴리오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나라 전체의 최적 포트폴리오’라는 말이 유독 귀에 꽂혔다. 마코위츠라면 어떻게 답했을까.
마코위츠 이전의 투자자들도 개별 주식의 위험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름 분산 투자도 했다. 하지만 왜, 어떻게 분산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투자는 여전히 종목 선택에 머물러 있었다. 마코위츠가 1952년 쓴 논문의 제목은 ‘포트폴리오 선택’이다. 그는 투자자의 기대수익을 만족시키면서 위험(변동성)은 최소화하는 최적의 조합을 선택하는 게 투자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봤다. 이른바 ‘효율적 투자선’이다.
마코위츠는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결정하는 것은 각 자산이 가진 위험의 총합이 아니라 투자자산 간의 ‘상관관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주식과 채권, 성장주와 가치주, 미국 주식과 중국 주식처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을 최대한 많이 담을수록 포트폴리오의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전 세계 투자 가능 자산에 골고루 분산한 ‘글로벌 포트폴리오’가 마코위츠가 말하는 최적의 포트폴리오다.
국가 전체 포트폴리오를 ‘효율적 투자선’ 위에 올려놓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투자자산 간 상관관계를 낮춘 분산 투자만이 위험 대비 수익률을 높이는 ‘유일한 공짜 점심’이라는 투자의 황금룰은 국가 포트폴리오에도 유효하다. 노르웨이와 중동의 산유국들이 국가 포트폴리오에서 원유 비중을 줄이기 위해 국부펀드를 만들어 전 세계 투자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민연금과 서학개미도 그 황금룰에 다가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국민연금은 “왜 국민 돈을 해외로 들고 나가 위험한 투자를 하느냐”는 비전문가들의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해외 주식·채권(2002년), 해외 부동산(2006년), 인프라(2007년), 헤지펀드(2016년), 사모대출펀드(2018년)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왔다.
서학개미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이 회사 고객이 보유 중인 해외 종목은 30개국 1만5068개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의 가계는 아직도 자산의 65%를 부동산에 묶어놓고 있다. 해외 자산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홈바이어스’(자국 자산 편중)가 심각하다.
혁신과 성장을 위해 국내에 자본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가는 돈을 억지로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술 패권 시대에 혁신 경쟁은 돈 싸움이 됐지만, 돈이 없어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혁신이 자라날 토양을 조성하면 돈은 따라오게 돼 있다. 결국 규제개혁, 노동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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