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이른바 ‘요새화’ 전략이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중심의 각종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난 30여년간 글로벌 자본 시장을 지배해 온 ‘효율성’과 최적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글로벌 지형 변동에 한국 기업이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중국산 장비 비중이 올해 이후 완공되는 발전설비에서 일정 수준을 넘으면 IRA의 기술 중립적 생산세액공제나 투자세액공제를 박탈당한다. 미국이 지정한 중국 기업들이 관여한 경우 아예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 규정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정부의 소유, 통제 또는 관할하에 있는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 부품이나 핵심 광물이 포함된 전기차 및 에너지 설비에 대해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특히 중국 자본이 25% 이상 투입된 합작 법인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 기업들이 멕시코나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시도했던 우회 진출로가 완전히 봉쇄됐다. 여기에 미 무역대표부(USTR)가 통상법 301조를 앞세워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기존 7.5%에서 25%로 인상하면서 중국산 배터리는 미국 시장 내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동안 중국이 저가 공세로 장악했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도 보조금과 관세 장벽 덕분에 한국 기업이 ‘가격 경쟁력이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 시장에서는 ‘탄소’가 새로운 관세가 됐다. 2023년부터 이어진 이른바 '전환 기간'을 끝내고, 올 1월 1일부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확정 기간’에 돌입했다. 이제 EU로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을 수출하려는 기업은 단순히 배출량을 보고하는 것을 넘어, 검증된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CBAM 인증서’ 공식 판매 시작 시기는 내년 2월이다. 2026년 수입분을 2027년에 소급 정산하는 구조다.
최근 EU 배출권 거래제(ETS)의 6개월 평균 경매 가격은 톤당 약 75유로 선에서 형성돼 있다. 탄소 배출 집약도가 높은 중국산 철강은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철강 산업은 여전히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하는 고로 비중이 90%에 육박해 톤당 탄소 배출량이 약 2.1~2.3톤에 달한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중국산 철강은 톤당 최대 약 65유로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관련 전문 컨설팅 업체 'Global Efficiency Intelligence'는 추정했다. 반면 한국산 철강의 추가 부담액은 약 25유로 수준으로, 중국산의 38% 수준 정도로 알려졌다. 한국 철강사들은 국내 K-ETS(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이미 탄소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CBAM의 ‘기지불 탄소 가격 공제’ 원칙에 따라 EU 국경에서 부담액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법안의 파급력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는 장기적인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 파트너와 계약을 조기 종료하거나 재계약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전체 데이터 유출 우려와 공급망 단절 리스크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바이오산업에서 타협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한국의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이 거론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중동 정세의 불안은 한국 방산과 조선업에도 큰 기회를 제공했다. 미 해군은 자국 조선업의 쇠퇴로 함정 유지보수 능력이 바닥나자, 동맹국인 한국에 손을 내밀었다. 중국의 급격한 해군력 향상에 대응해야 하지만 미국 내 독은 포화 상태이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은 최근 국내 거제 조선소를 방문해 “한국 조선소의 공정 관리 능력과 기술력이 미국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조선소에는 미 군함을 맡길 수 없는 보안 문제아 자국 조선소의 역량 부족을 언급하며 한국이 유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방산 수출 역시 순항 중이다. 최근 한국 방위산업 수출액은 크게 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생산 라인 노후화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독일, 프랑스 대신 '즉시 전력' 공급이 가능한 한국 무기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K-방산은 폴란드에 이어 루마니아, 영국 등으로 협력 대상을 확대하며 '자유 진영의 무기고'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 '장벽의 역설'이 한국 경제에 장밋빛 미래만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신뢰 비용’의 증가와 ‘지정학적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 효율적인 중국산 공급망을 배제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상승이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보복 조치도 우려된다. 중국이 희토류나 갈륨, 게르마늄, 흑연 등 핵심 광물 수출을 통제할 경우, 한국의 반도체 및 배터리 산업은 원자재 수급난을 겪을 수 있다. 한미 정부 간 협의로 내년 말까지 흑연 관련 FEOC 규제 유예를 받아냈지만, 탈 중국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공급망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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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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