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앨라배마주에는 지금도 아이스크림을 뒷주머니에 넣고 길을 걸으면 불법이라는 규정이 남아 있다. 말을 유인해 훔치던 시절의 유물이다. 아무도 지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누가 나서서 없애지도 않는다. 법은 그렇게 화석처럼 남는다. 웃어넘길 수 있는 해외 토픽이지만, 이것이 기업 현장의 이야기라면 웃을 수만은 없다.오늘날 한국 신산업 기업이 마주한 현실은 규제 화석의 늪이다. 기업이 체감하는 규제의 문제는 단순히 많다는 양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만들어진 규정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충돌하는 규제 위에 또 다른 규제가 덧칠되는 구조가 더 문제다. 규제는 누적되고, 책임은 분산되며, 최종 결론은 늘 ‘검토 중’으로 남는다.

해상풍력발전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적극 추진됐지만 인허가 구조 탓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산림청 국방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관여하면서 허가까지 7~10년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경쟁국 대만은 2024년 말 3GW 이상 상업 운전을 시작하며 반도체산업에 필수적인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우리 국회도 지난해 초 특별법으로 인허가 절차를 통합했지만, 체감은 사후약방문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기존 규제를 과감히 정리하기보다 충돌을 덮기 위해 ‘특별법’이라는 옥상옥을 얹는 방식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최근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도입으로 충격을 준 자율주행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27년까지 레벨4 상용화를 선언했지만 사고 시 책임 소재나 기존 운수업계와의 상생 논의는 시작도 못 했다. 기술은 이미 도로에 올라왔는데 법적 책임은 운전자 시대에 머문다. 실증은 가능해도 상용화는 늘 ‘임시 허용’에 머문다. 이런 법적 불확실성은 혁신기술 투자를 막는다.
이 규제 난맥상은 기업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강요한다. 카스 선스타인은 이를 ‘시간세’라고 불렀다. 복잡한 행정 절차와 규제 대응을 위해 허비하는 시간을 세금에 비유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은 2007년 규제 준수에 들어가는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해 모델링하고, 행정 부담의 25%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목표 달성을 알리며 그들이 남긴 ‘규제개혁은 돈이 들지 않는 가장 강력한 경기부양책’이라는 선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규제가 장벽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규제 환경을 경쟁 우위로 전환하는 비시장 전략도 가능하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은 기술 개발에만 매몰되지 않고, 신의료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건강보험 수가 적용을 동시에 추진했다. 초기부터 당국과 소통하며 판독 가치를 입증할 데이터를 제시했고, 업계 표준의 문턱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로 확장해가고 있다. 규제는 비용이지만 현명한 대응으로 걸림돌을 극복한 보기 드문 사례다.
비시장전략 관점에서 기업의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 기업 내부에서 규제 대응을 매몰비용이 아니라 성장전략의 일부로 재설계해야 한다. 규제 모니터링, 쟁점별 정책 시나리오, 이해관계자 소통을 경영 전략과 유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샌드박스나 임시 허용을 활용해 시장 진입을 하더라도 ‘임시’가 영구화하지 않도록 상용화 단계의 제도 설계까지 끌고 가야 한다.
둘째, 산업 차원의 규제 폐기를 공동 목표로 만들어야 한다. 개별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복잡한 규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업종 협회나 경제단체가 나서서 규제 충돌 지도(부처·법령·위험성 교차표)를 만들고 규제준수 비용을 산정해서 사회에 알려야 한다. 또 시민사회 및 전문가와 연대해 대안을 설계, 사회적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 모든 규제개혁의 마침표는 정부와 국회가 찍어야 한다. 그러려면 입법에 대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더 많은 법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법을 정리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영국의 ‘One-in, Two-out’(하나를 만들면 두 개를 없앰), 미국의 규제 비용 총량제처럼 규제 감축을 통한 사회적 비용 절감을 성과로 기록하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법은 쌓아두는 유물이 아니다. 제때 치우지 않는 국가는 스스로 만든 그물에 발이 묶인다. 규제를 없앤 정치인과 정부를 칭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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