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한국경제신문이 인터뷰로 만난 애서(愛書)가들의 이야기는 이런 상투적 핑계를 무력화한다. 이들은 시간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각자 일상에 맞는 독서의 기술을 만들어냈다. 편한 시간과 장소를 두고, 손에 익은 방식으로 책장을 넘기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읽은 흔적을 남긴다. 독서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새해 독서 계획이 막막하다면 목표 권수부터 세울 필요는 없다. 침대 머리맡의 책 한 권, 가방 속 얇은 책, 손에 익은 펜 하나면 충분하다. 각자 삶에 맞게 책을 배치해보면 어떨까.
방송인 이금희 역시 평일엔 차 안, 집, 가방 등 곳곳에 책을 두고 잡히는 대로 읽는 편이다. 하지만 그에게 진짜 행복은 주말의 독서 시간. “아침에 일어나 노트북과 책 두세 권을 들고 카페로 가요. 사람이 없는 오전에 좋아하는 자리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죠. 점심을 먹고 산책한 뒤 또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것 같아요.”
밤의 독서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흑백요리사’ 시즌 1의 에드워드 리 셰프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책을 읽는다”고 했다. 식당 운영과 가족 생활로 바쁜 일정 속에서 밤은 유일하게 온전히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다.
소설가 임경선에게도 독서는 하루의 끝에 놓여 있다.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집필에 집중하고, 개인 독서는 늘 밤에 한다. 자기 전 한두 시간. 외출할 때도 책 한 권은 반드시 가방에 넣는다. 그는 “유튜브를 전혀 안 봐서 남들보다 책 읽는 시간이 더 확보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는 밤, 자료 조사를 위한 독서는 낮이라는 구분도 분명하다.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 대표인 박정민 역시 책 읽기 좋은 시간으로 밤을 꼽았다. 그가 즐겨 찾는 장소는 카페다.
건축가 유현준은 감각에 따라 독서한다. “뇌가 배고파하는 느낌이 들 때”만 책을 집는다.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는 굳이 안 읽는다고. 매일 읽지도 않고, 한동안 아예 책을 안 볼 때도 있다. 그 대신 읽기 시작하면 몰아서 본다. 흥미가 떨어지거나 내용이 어렵더라도 집어 든 책은 끝까지 간다.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1년에 15~20권 남짓이지만, 한 권 한 권의 밀도는 높다.
천문학자 심채경은 ‘지워지는 펜’을 쓴다. “줄도 긋고 메모도 하며 책과 부대끼는 게 더 재밌지만, 줄이 너무 삐뚤면 금세 지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책에 흔적을 남기지 않던 어릴 때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 지워지는 펜으로 타협했다. “감성이 너무 넘치거나 지식이 하찮은 상태로 쓴 메모는 몇 장 더 읽은 뒤 돌아와 고치거나 지우기도 한다”고.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자 이낙준 작가는 ‘갤럭시 폴드’를 독서 도구로 활용한다. “펼쳐놓고 보면 거의 e북 리더기 느낌”이어서 웹소설을 읽기에 편하다. 다만 자료 조사나 공부가 목적일 때만큼은 종이책을 고집한다. “그렇게 해야 더 머리에 남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최준철은 읽은 책을 인스타그램에 하나씩 기록한다. 책 표지와 간단한 감상을 남기는 ‘북스타그램’은 일종의 독서 메모이자 개인 아카이브다. 연말이면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돌아보며 ‘내 맘대로 뽑은 도서 어워드’를 열어 ‘올해의 책’ ‘작품상’ 등을 선정해 공유하기도 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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