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1980년대 초부터 신상호 작가는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케냐,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를 두루 찾으며 아프리카의 토기 문화와 샤머니즘, 현대미술과의 접점을 만났다. 그는 ‘아프리카의 꿈’ 연작에서 다양한 동물 군상을 흙으로 빚었다. 화장토를 여러 번 바르고 지우고 구워 질감을 내는 것은 1990년대부터 펼친 전작(분청)과 유사하지만, 전작에서 볼 수 없는 남다른 크기, 물성의 깊이, 다채로운 색이 두드러졌다. 동물이라고 하지만 언뜻 보면 사람과 같은 형체다.‘아프리카의 꿈’의 원형은 원시미술 그리고 작가가 아프리카에서 본 풍광에 있다. 원시미술은 이미 피카소, 앙리 루소, 폴 고갱 등 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원시미술의 특징인 간결함과 강렬한 색채, 단순·과장된 표현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인간 내면의 불안, 모호함, 원초적 감각을 표현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신상호의 ‘아프리카의 꿈’ 연작 역시 원시미술처럼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심벌리즘을 관객의 마음에 불러일으킨다. 고대인들이 흙을 가래 빚고 툭툭 돌려가며 쌓아 흙집을 짓고 그릇을 빚었던 것처럼, 그도 두꺼운 흙덩이나 도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형상을 빚었다. 이목구비나 뿔 등 생물학적 특징을 살리되 그 이외에는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것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동물이기도 한 통합적이고 하이브리드한 존재다. 인간의 연약함을 신(神)에게 의탁하기 위해 세운 토템은 대부분 영적인 사물로서 주술성이 짙고 자연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아프리카 미술뿐 아니라 한국 전통미술도 다수 수집했다. 장흥 신상호 스튜디오 곳곳에는 장승, 석물, 민화, 조각보 등 그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수집품이 동거한다. 그런데도 이질감이 없다. 수집물은 시대, 용도, 지역, 제작자가 다를지라도 태생의 목적과 재질, 가공 기법 등에서 비롯된 고유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과장하거나 생략 혹은 해석을 달리하는 변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함 속 점, 선, 면을 가지고 놀고 펼치는 인류 공통의 조형 원리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원시미술을 참조한 현대미술가의 방식이기도 하고, 신상호가 전 연작을 통틀어 창작을 펼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가 원시미술을 시작으로 유럽 빈티지 골동부터 중국 도자기, 한국과 유럽의 군수품까지 폭넓게 사물을 수집하고 수시로 보는 것은 눈과 감각을 훈련하기 위함이다. 작가는 한국 전통미술부터 아프리카 원시미술 그리고 다양한 수집품을 섭렵하며 회화와 조각, 건축, 공예 등 다양한 영역을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한국 미술의 장에는 전통을 참조해 새로운 한국 미술을 태동하려는 이가 많다. 전통은 물질이나 방법, 과거의 형식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음을 알면서도 옛 유물이나 서화의 도상을 단순하게 복제하듯, 가볍게 변형하는 공허한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다. 전통은 형태와 재료, 방식이 아니라 전통을 태동시키고 지속해 온 한국인의 예술적 감성과 표현 방식 그리고 삶에 있다.
신상호의 작업은 우리 전통을 참조하되 그것을 한국이라는 지역성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로 넓히며, 인류의 본질적인 감정과 연결하며,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보편성을 확인하는 데 조형의 의의가 있다. 서구화, 세계화를 외치다 우리가 자칫 잃어버리거나 잊고 있는 것을 대면하게 된다. 우리의 특수함이 아니라 보편의 힘이야말로 신상호가 예술을 통해 주장하고 확고히 하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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