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기의 죽음은 어쩌면 다들 각오하고 있던 터였다. 구본창의 ‘영정 사진’이 준비된 것도 안성기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던 세밑이었다. 지난 6일간, 아니 그가 쓰러졌던 2019년 이후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그의 우환(憂患)에 관한 얘기가 오갔다. "안성기가 쓰러졌다며?", "그가 많이 아프다며?"," 그가 죽어간다며?" 등등의 얘기로 사람들은 미간에 ‘슬픔의 삼각형’을 모았다. 누구나 다 동의하는 얘기이지만 안성기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우선권이 없다.
안성기는 말 그대로 국민배우였다. 그건 그의 한참 선배인 수많은 원로 배우도 얻지 못한 칭호였다. 안성기는 '만인의 연인'이었고 '만인의 형제 오빠 동생'이었으며 '만인의 아빠'이자 '만인의 자식'이었다. 하여, 이제 그의 죽음이 남긴 엄청난 슬픔은 역설적으로 만인에게 나뉘며 그 깊이가 다소 누그러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안성기의 죽음으로 한 세대가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참담한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저 바닷물은 또다시 밀물로 돌아온다 한들 그 바다가 그 바다가 아닐 것이다. 한 세대가 갔다. 이제 완전히 갔다. 남아 있는 자 비통해하지 말지어다. 그것은 정해진 운명이었고 안성기가 그것 모두를 대신해서 짊어지었을 뿐이다.
1952년생인 안성기는 1957년 <황혼열차>에서 아역배우로 데뷔해 지금껏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에 있어 수많은 이정표의 작품을 남겼다. 대체로 한국 영화의 슬프고 비애에 찬, 굴곡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거나(<꼬방동네 사람들> <칠수와 만수> <남부군> <하얀 전쟁>),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휴먼 드라마였다(<기쁜 우리 젊은 날> <남자는 괴로워> <축제> <피아노 치는 대통령>).

안성기 스스로 지닌, 영화 출연에 대한 원칙은 '좌우 진영 논리에 편협한 영화는 출연하지 않는다', '성적인 수위가 지나치게 높은 영화는 멀리한다', '가능하면 인간주의를 지향하는 작품을 추구한다'였다. 안성기가 아주 드물게 악역으로 나오긴 했어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명세 감독의 전설적인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는 냉정하고 냉혹한 킬러로 나오지만, 애인인 주연(최지우)은 그를 보호하고 탈주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안성기는 킬러였어도 우리 옆집에 사는 점잖은 킬러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캐릭터의 배우였다.
안성기 연기의 진수는 이명세 감독의 또 다른 히트작 <남자는 괴로워>(1995)였다. 1952년 할리우드의 스탠리 도넌 감독이 만든 진 켈리 주연의 <사랑은 비를 타고>의 일부 장면(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일본의 장기 히트 시리즈 영화 <남자는 괴로워>(1969~1995)의 제목을 따 온, 일종의 이 ‘콜라보’ 영화에서 안성기는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도 받치는 만년 과장 역으로 눈물 콧물을 짜낸다. 안성기는 다소 어눌하고 바보스러운 연기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그건 그가 평소에도 그처럼 착하고 순수하며 고요한 심성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착한 연기를 잘할 수가 없다. 평소 성품이 극악스러운 사람들은 깡패, 양아치, 사기꾼, 조폭의 연기, 욕지거리 대사를 찰지게 해낸다. 지금껏 영화를 보면서 안성기의 입에서 이런저런 욕이 나오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안성기의 연기는 한계 아닌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에서 베트남전 참전의 트라우마를 겪는 고달픈 지식인으로 안성기만 한 사람이 없다. 지리산 빨치산의 대장으로 얼굴 광대뼈가 강퍅하게 마른 채 이데올로기보다 생사의 깊은 구멍을 찾아 고뇌하는 지식인의 이미지로 안성기만 한 사람은 우리 영화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숱한 문인, 화가, 배우들이 지리산 빨치산, 광주 민중항쟁의 영화에 나온 후 일부 사람들로부터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안성기는 그런 역할을 한들, 그에게 이념적 편향의 라벨은 붙지 않았다. 아니, 감히 함부로 붙이지를 못했다. 안성기가 그렇다면, 사람들 대다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임금이나 대통령 역할에 있어서 안성기를 따라갈 수 있는 자 전무후무하다. 독재자 역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상식을 지닌, 우리가 모두 바라는 이상적인 대통령 역할로 안성기는 최고였다. 강우석 감독이 만든 <한반도>(2006)에서 안성기는 북한의 김정일(백일섭)과 만나 손을 맞잡고 힘껏 들어 올린다. 두 사람은 일본 신군국주의 군대의 공격에 맞서 남북한 합동 군사작전을 편다. 그 누구도 안성기의 ‘북한 공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안성기 같은 사람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영화의 대통령이었으며 다만 잠깐 배우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줬다.

안성기는 스스로 내려올 줄 알고, 내려놓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런 겸손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요즘에야 <서울의 봄>으로 유명한 김성수 감독은 2001년 중국 랴오닝성의 싱청(요녕성, 遼寧省의 흥성시, 興城市)에서 세트를 만들고 <무사>를 찍었다. 이 영화에서 안성기는 거의 처음으로 조역을 맡았다. 노회한 무사 진립이었으며, 나오는 씬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비중은 높았다. 씬이 많지 않다 보니 다소 무료하게 느끼던 그는 추운 날씨에 후배들을 위해 촬영장 구석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불씨를 죽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너무 활활 태우다 연기를 많이 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불을 죽이면 안 되니 이만저만 마음 가는 일이 아니었다. 그 모닥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에 떠는 후배들에게 "불 곁으로 와, 어여 좀 쬐다 가서 또 찍어"하며 속삭이던 그가 생각이 난다. 그 착한 미소는 잊을 수가 없다. 마침, 영화 속 진립도 장수 최정(주진모)과 무사 여솔(정우성)의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역할이었다. 안성기는 지난 20년 넘게 자신의 역할이 가진 폭과 중요도를 스스로 낮추고 늘 중간자로서의 인물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안성기는 술을 늦게 배웠다. 담배는 영화 속에서라면 모를까 일절 피우지 않았다. 늦게 배운 술이라지만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걸 절대 본 적이 없다. 와인 몇 잔에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채 "이 좋은 걸 참 늦게 알았네"라며 중얼거리는 정도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 배우는 살이 쪄서도 안 되고 배가 나와서도 안 되며 무엇보다 자기 관리를 못 하면 안 된다며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가 어느 날 툭, 자신의 생명선을 스스로 놓아 버렸다. 그가 와병 중이었던 2022년쯤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 특별상영 때 병색이 완연한 백발의 모습으로 참석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오랜 투병 생활의 김희라보다 더 아파 보였다. 여자 주인공이었던 김보연은 이날 무대에서 순전히 안성기 때문에 눈물을 터뜨렸다.

혈액암 판정 직전, 피트니스 클럽에서 웨이트 운동 중에 일으킨 뇌출혈에서 간신히 회복한 직후 출연한 <한산: 용의 출현>에서 안성기는 대사가 짧거나 거의 없다. 감독인 김한민의 배려이기도 했겠지만, 안성기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도 안성기는 조역이었다. 기이하게도 다소 짧았던 그의 대사, 다소 이 모든 고난조차 다 허망한 일 아니냐는 듯한 그의 표정이 영화에 잘 스며들어 있다. 실로 모든 게 다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성기가 죽었다. 안성기의 시대가 죽었다. 자 이제 우리에게 그 어떤 배우가 인생의 반려자가 될 것인가. 아마도 그 자리는 오랫동안 비게 될 것이다. 그가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아역 이후의 성인 영화배우로 살았던 지난 40여 년간 우리 모두 행복했었다. 시대의 흥망성쇠를 안성기만큼 같이 했던 배우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의 무덤 앞에 두 손을 모으자. 그의 지나온 삶에 실로 경배를. 영면하시라.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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