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그는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안성기의 영정 사진(사진)은 사진작가 구본창이 찍었다. 1987년 배창호 감독이 만든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장에서 찍은 것이다. 이번 영정 사진은 안성기의 부인인 오소영 씨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그가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부인은 평생 그의 그런 심성을 사모하고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
1952년생인 안성기는 1957년 ‘황혼열차’에서 아역배우로 데뷔해 지금껏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에 있어 이정표가 되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체로 한국 영화의 슬프고 비애에 찬, 굴곡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거나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휴먼 드라마였다.
안성기의 영화 출연에 대한 원칙은 ‘좌우 진영 논리에 편협한 영화는 출연하지 않는다’ ‘성적인 수위가 지나치게 높은 영화는 멀리한다’ ‘가능하면 인간주의를 지향하는 작품을 추구한다’였다. 안성기가 아주 드물게 악역으로 나오긴 했어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얀 전쟁’에서 베트남전 참전의 트라우마를 겪는 고달픈 지식인으로 안성기만 한 사람이 없다. 지리산 빨치산의 대장으로 얼굴 광대뼈가 강퍅하게 마른 채 이데올로기보다 생사의 깊은 구멍을 찾아 고뇌하는 지식인의 이미지로 안성기만 한 사람은 우리 영화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숱한 문인, 화가, 배우들이 지리산 빨치산, 광주 민중항쟁의 영화에 나온 후 일부 사람들로부터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안성기는 그런 역할을 한들, 그에게 이념적 편향의 라벨은 붙지 않았다. 아니 감히 함부로 붙이지를 못했다. 안성기가 그렇다면, 사람들 대다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안성기는 스스로 내려올 줄 알고, 내려놓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런 겸손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요즘에야 ‘서울의 봄’으로 유명한 김성수 감독은 2001년 중국 랴오닝성의 싱청에서 세트를 만들고 ‘무사’를 찍었다. 이 영화에서 안성기는 거의 처음으로 조역을 맡았다. 노회한 무사 진립이었으며, 나오는 신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비중은 높았다. 신이 많지 않다 보니 다소 무료하게 느끼던 그는 추운 날씨에 후배들을 위해 촬영장 구석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불씨를 죽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모닥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에 떠는 후배들에게 “불 곁으로 와, 어여 좀 쬐다 가서 또 찍어”하며 속삭이던 그가 생각이 난다. 그 착한 미소는 잊을 수가 없다. 마침, 영화 속 진립도 장수 최정(주진모 분)과 무사 여솔(정우성 분)의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역할이었다. 안성기는 지난 20년 넘게 자신의 역할이 가진 폭과 중요도를 스스로 낮추고 늘 중간자로서의 인물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안성기가 죽었다. 안성기의 시대가 죽었다. 자 이제 우리에게 그 어떤 배우가 인생의 반려자가 될 것인가. 아마도 그 자리는 오랫동안 비게 될 것이다. 그가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아역 이후의 성인 영화배우로 살았던 지난 40여 년간 우리 모두 행복했었다. 시대의 흥망성쇠를 안성기만큼 같이한 배우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의 무덤 앞에 두 손을 모으자. 그의 지나온 삶에 실로 경배를. 영면하시라.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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