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국금융학회 회장으로서 지난해 다섯 차례 심포지엄을 열었고, 그중 세 번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것이었다. 매번 많은 청중이 몰렸고, 토론 열기도 뜨거웠다. 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새 결제 수단을 넘어 금융의 규율과 혁신이라는 두 세계관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임을 보여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향후 논의는 도입 여부보다 어떻게 이 접점에서 발생할 편익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통제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그동안 분리돼 있던 은행과 결제망, 감독체계로 구성된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디파이 생태계, 즉 토큰·스마트계약·자동청산에 기반한 시스템을 잇는 핵심적 연결 고리다. 문제는 이 두 시스템이 신뢰를 형성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전통 금융이 규제와 공적 안전망으로 신뢰를 설계해 왔다면 디파이는 코드 기반 시스템과 담보, 시장 규율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코드 자체의 취약성 등 기술적 리스크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상이한 두 세계관이 융합하면 결제·정산 효율을 높이고 경쟁을 촉진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네이버와 두나무의 결합 시도는 이런 시너지를 겨냥한 상징적 움직임이다. 그러나 제도 설계가 미비할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국경 간 이전이 쉬워질수록 불법 자금 이동과 자금 세탁 우려는 커진다. 여기에 디파이 특유의 유동성 고갈과 과도한 레버리지에 따른 연쇄 청산이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전통 금융의 취약성과 맞물릴 경우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은행업은 엄격한 인가와 자본·유동성 요건, 리스크 관리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럼에도 단기 예금을 장기 대출로 운용하는 만기불일치 탓에 작은 불신이 뱅크런으로 번질 수 있다. 정부가 예금보험 제도를 운용해 소액 예금자를 보호하고, 위기 시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로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공적 안전망 덕분에 은행은 신뢰를 확보하며, 화폐 공급과 지급결제의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오랫동안 제도권 밖에서 자율적으로 성장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은행처럼 인가를 받지 않았지만, 준비자산 보유와 달러 1 대 1 상환을 약속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 단위이자 디파이의 유동성 공급 및 담보자산으로 활용되며 사실상 암호자산 내 화폐 역할을 해왔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의 신속한 이전·정산 기능은 국경 간 결제에서 영향력을 넓혔지만, 동시에 신원 확인의 불투명성과 자금 세탁 통로라는 오명도 키웠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쟁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의 범위, 그리고 상환 약속이 위기 시에도 작동하도록 하는 환매 및 정리 절차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둘째, 법정화폐와의 접점(온·오프램프)을 어떻게 관리하고 신원 확인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셋째, 국경 간 이전과 국제결제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제도가 미비하면 불법자금 이동과 자금세탁의 통제 공백이 커지고, 코인런(대량 환매)과 유동성 경색이 전통 금융의 취약성과 맞물려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도 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도 대형 금융기관 간 상호 연계성을 통해 충격이 전파되며 증폭된 바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프로그램이 가능한 토큰 기능이 기존 결제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자동화된 지급·정산 같은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기반의 자율적 거래가 확산할수록 이런 용도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일상으로 확산될수록 안전장치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들도 관련 위험을 꾸준히 경고해 왔다. 이제 규제 초점은 기술 자체를 억제하는 데서 벗어나 준비자산 유동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고, 실효적인 신원 확인 및 자금세탁 방지 체계를 정교하게 구축하는 데 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스테이블코인의 혁신과 전통 금융의 안정, 앞서 말한 두 세계관이 공존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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