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방문한 중국 선전의 CRF유니언. 화웨이 출신 개발자들이 모여 창업한 이곳은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공장을 구축해주는 컨설팅 회사다. 평범해 보이는 사무실 안에는 첨단 로봇팔과 3차원(3D) 스캐너, 딥러닝 기반 컴퓨터 비전 장비 등 공장을 만들어주는 장비가 가득했다. 세계경제포럼(WEF)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18년 등대가 배를 안내하는 것처럼 제조업의 혁신을 이끄는 공장이라는 의미로 ‘등대공장’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지난해 WEF가 선정한 세계 등대공장 190여 곳 중 약 70곳이 중국에 몰려 있다. 이 회사는 등대공장 3곳을 세웠다. AI와 제조를 결합해 글로벌 제조업의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공장 자동화는 샤오미 같은 대기업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2016년 창업한 헤이후과기는 ‘공장을 스마트폰처럼’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제조실행시스템(MES)을 중국 전역의 중소 제조업에 이식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리창 총리 주재로 연 경제 좌담회에서 실질생산력 발전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이 자리에 헤이후과기 창업자가 산업 AI 분야 기업인 8명에 포함되며 주목받았다. 중국 톈진에 있는 자동차 공장 설계 전문기업 AE코퍼레이션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완성차 업체의 의뢰를 받아 로보틱스 등의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공장을 구축해주는 기업으로,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이 이 회사를 견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의 특명’에는 ‘레드테크’(중국의 첨단기술)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제조 굴기’는 자동차, 배터리를 넘어 반도체·로봇 등 첨단산업의 제조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스마트공장을 스마트폰 찍어내듯 제조 생태계를 통째로 수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중국의 행보가 한국의 미들파워 허브 전략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이미 주요 제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2015년 발표한 첨단 기술 확보 전략인 ‘중국 제조 2025’에서 꼽은 11개 산업 중 전기차·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최소 7개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을 배출했다.
중국의 또 다른 위협 요인은 젊은 연구개발(R&D) 인재들의 창의성이다. 촘촘하게 설계된 제조 생태계와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더해져 중국은 첨단 기술 산업에서도 ‘중국 천하’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6년 이후 매년 R&D 투자를 10% 가까이 늘렸고, 관련 예산은 2020년 2조4393억위안에서 지난해 4조위안을 넘은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방문한 저장성 항저우는 중국인 14억 명의 미래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오픈AI 대항마인 딥시크와 중국 대표 휴머노이드로봇 기업 유니트리뿐만 아니라 딥로보틱스(휴머노이드로봇), 브레인코(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매니코어(AI 공간지능), 게임사이언스(게임) 등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중국 테크업계의 ‘6마리 용’(류샤오룽·六小龍)으로 불리는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중국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최전선 기술에서 선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항저우의 한 기업인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본고장인 항저우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10년 넘게 혹독한 실험을 거쳤다”며 “공산당은 스타트업에 무이자 자금 지원, 임차료 감면, 연구 공간 등을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가전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로보락은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의 45%로 선두를 점령했고, 샤오미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스마트 가전으로까지 제품군을 확대하며 판매를 늘리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밀가공 업체를 인수하려는 중국 기업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자칫하면 한국 제조업이 뿌리째 중국에 먹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우리 공급망이 미·중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해선 안 된다”며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같은 편으로 둘 수밖에 없게 할 히든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전·항저우=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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