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공학 전 분야에서 미국 수준의 논문을 가장 많이, 가장 빨리 만들어내는 국가다.’ ‘중국의 위협’과 관련해 서울대 공대 산하 15개 연구소 소속 교수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15개 연구소 중 ‘중국보다 앞서 있다’고 한 곳은 반도체공동연구소뿐이라는 점이다. 그 격차조차 미국의 극자외선노광장비(EUV) 중국 수출 금지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은 “국가 주도의 중국식 혁신으로는 할 수 없는 자유와 창의에 기반한 미래 기술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파격적인 규제 타파와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좌담회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최우영(반도체공동연구소)=반도체는 그나마 ‘격차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축복이겠네요. D램은 아직 격차가 큰 편이고 낸드플래시는 상당히 줄었습니다. 시스템 반도체 쪽은 중국에 뒤진다고 할 수 있고요. 문제는 노광장비인데 곧 자체 개발할 거예요. 수율에서 ASML의 반만 나와도 계속 사용하면서 성능을 끌어올릴 겁니다. 한국에 가장 큰 위협이죠. 논문이나 학회 수준은 미국과도 격차가 없을 겁니다. 수준 자체도 놀랍지만 속도도 엄청나요.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가 중국에서 먼저 나오는 경우가 꽤 있을 정도입니다.
▷김현진(자동화시스템)=로봇 분야에선 중국 스타트업에 인재가 넘칩니다. 미국에 못 가는 인재가 대기업에 차고 넘쳐서 스타트업으로도 흘러간다는 거예요. 지난달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인공지능(AI) 학회인 뉴럴IPS에서 중국은 가장 많은 논문을 쏟아냈습니다. 요즘 주목받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관련 논문은 미국이나 중국에선 한 편에 저자가 200명씩 붙기도 해요. 그만큼 융합과 협업이 중요하다는 건데 논문 기여가 연구비와 연결되는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김도희(화학공정신기술)=석유화학 분야에선 중국을 어떻게 피할지가 화두입니다. 고부가가치 쪽으로 가자고는 하는데 답이 잘 안 나오는 상황이에요. 기초공학·과학에서 거의 모든 메이저 저널의 핵심 편집자가 중국인이거나 중국계입니다. 우리 과는 ‘중국으로 포닥(박사후과정)을 가는 게 커리어 면에서 미국보다 배울 게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진지하게 나눌 정도로 심각합니다.
▷강정신(에너지자원신기술)=희토류는 중국이 1등이죠. 그나마 경쟁하려면 휴대폰 등에서 나오는 폐자석을 활용해 리사이클링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도 중국이 속도가 더 빨라요. 중국은 대학 한 곳에 희토류 자원 실험을 하는 교원이 여럿이고, 학생도 100명가량 됩니다. 한국은 서울대 세 명에 경북대와 충남대 정도에 교수 한두 명씩 있는 정도예요. 사실 희토류 등 희소금속 분야에선 중국과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습니다. 동시에 호주 등과 연대하고, 자원 회수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이복직(항공우주신기술)=중국의 기술 위협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벌써 식상한 주제 같아요. 많이 늦었습니다. 딥시크 쇼크가 있기 전에도 많은 신호가 있었는데 우리가 애써 무시한 거죠. 항공우주 분야 상위 10% 저널이 3개 있는데 그중 2개가 중국 저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논문을 쓰더라도 상위 10%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이제 중국 저널에 논문을 낼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중국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연구자가 30년 이상 버틸 수 있게 지원합니다. 국가핵심연구소 프로그램을 40년 가까이 운영한 덕분이죠.
▷함영집(건설환경종합)=국토교통 분야에서 중국은 스케일 자체가 다릅니다. 2013년부터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100년 구상을 갖고 시작했다고 하니까요. 중국이 무서운 건 인프라 사업과 건설 프로젝트를 하면서 데이터를 대규모로 모으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건설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와 안전사고죠. 중국은 무인 건설로 빠르게 이동 중입니다. 여기에 피지컬AI 기술이 접목되겠죠. 한국에선 안전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를 찾고, 처벌하는 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윤명환(산업시스템혁신)=데이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기업인들한테 이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화웨이나 샤오미가 전기자동차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만드냐고요. 중국엔 스마트팩토리를 통째로 만들어주는 회사가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컵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그 회사가 컵 공장을 지어주고, 공장을 어떻게 운영하는지까지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런 시스템이 중국 제조업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것 같아요.
▷박희재(정밀기계설계)=중국 얘기를 하면 분위기가 금방 무거워지는데요. 중국과 맞대응해서 뭘 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중국이 성과를 내는 부분은 정확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생태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 반도체 생태계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얼마 전 공학한림원에서 반도체 미래를 두고 난상토론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칩 한두 개 개발하는 걸로는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닌 거 같다는 점입니다. 생태계 전쟁이라는 거죠. 대만은 AI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90%가 넘습니다. TSMC를 중심으로 최소 20년 준비한 생태계인 거죠.
▷신종원(전력)=전력반도체 분야도 국내엔 생태계가 아예 없다고 봐도 됩니다. 중국과 비교하면 부끄럽지만 딱히 말할 게 없습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아주 작고, 아주 빠르게 반응하는 민감한 반도체인 데 비해 전력반도체는 수천 볼트나 수백 암페어를 스위칭하는 느리고 덩치가 큰 반도체예요. 복잡한 공정이 아니어도 꽤 좋은 품질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 중국은 여기에 예산을 쏟아부어서 산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정경재(원자력미래기술정책)=세계 최초의 핵융합 실증국은 중국이 될 겁니다. 이견이 거의 없어요. 중국은 내부 경쟁이 치열합니다. 우리는 외부와의 경쟁에 밀려 ‘빨리 따라잡자’는 식이고, 중국은 이미 자국 내에서부터 ‘누가 먼저 실증에 올라가느냐’를 두고 엄청 경쟁합니다. 게임의 레벨이 달라요.
▷최완(뉴미디어통신)=세계에서 이동통신 시스템 제조사 중 화웨이가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10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죠. 시장경제 논리라면 당연히 망했어야 하는 회사들이 국가 지원을 바탕으로 살아남고, 그 시간에 기술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키우고,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을 편 겁니다. 그 결과가 화웨이예요. 그럼에도 미·중으로 생태계가 갈라서면서 한국에 가능성이 생길 겁니다. AI 시대에 소프트웨어 요소가 더 중요해지고 있고요. 아직 중국도 명확한 해결 모델을 확립한 것 같지는 않아요. 이런 분야를 발굴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손준우(신소재)=소재·부품은 여전히 일본이 잘합니다. 이 분야는 단순히 인력만 투입해서 단시간에 하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에요. 중국을 따돌리려면 일본처럼 고부가가치 소재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녹록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머리 좋은 학생과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이어왔지만 여건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떤 소재를 개발할 것이냐예요. 소니 이미지 센서도 아이폰이 나오면서 많이 팔리기 시작했거든요. 우리도 어떤 수요가 필요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재 혁신이 가능할 거예요.
▷이영기(컴퓨터)=모바일과 AI 접점 연구 분야에서 톱티어 학회인 모비시스 PC에서 제가 의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 심사 공정성을 높이려고 중국 심사위원 비중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더라고요. 피지컬AI도 하드웨어만으로는 승부가 안 될 겁니다. 중국의 약점은 소프트웨어예요. 엔비디아가 강한 것도 쿠다(CUDA)라는 소프트웨어 스택과 개발자 생태계 때문입니다. 피지컬 AI 등에서 큰 시장이 열릴 텐데 그때 플랫폼(반도체+소프트웨어 스택)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나마 미·중으로 공급망이 분리되면서 한국의 강점이 부각되고 있어요. 증강현실(AR)·가상현실(VR)만 해도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응용이 다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는 K컬처에다 반도체도 있고, 소프트웨어에서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성재(소프트파운드리)=제 생각에도 중국은 팀워크가 필요한 분야라든가,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분야에서도 약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중국을 이기려면 중국과는 반대로 움직여야 할 필요도 있어요. 정부가 피지컬AI를 자꾸 강조하는데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바이오AI는 어쩌고, 케미컬AI는 안 중요한가요. 일본은 AI 못한다고 우습게 보는데 AI 개발자들 스트레스 풀 때 대부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하러 갑니다. 정부가 이거 하라, 저거 하라는 식으로 방향을 과하게 규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정리=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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