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말이면 우리 회사는 전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송년의 밤’을 연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구성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다음 해를 관통할 메시지를 공유하는 시간이다.올해 필자가 선택한 슬로건은 ‘Keep Calm, Move Forward’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지만 결정과 실행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차분함은 정체가 아니고 전진은 성급함과 다르다. 평정심을 유지하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문장은 곧 경영 현장에서 몇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제때 움직이고 있는가. 내 판단의 리듬만큼 상대의 일정과 흐름 역시 존중하고 있는가. 시장과 기술 변화에 우리의 결정과 실행은 제대로 호흡하고 있는가.
경영 현장에서 분명히 체감하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시간만큼이나 파트너의 시간 또한 동일한 가치로 다뤄져야 한다. 결정을 미루고 실행을 늦추는 일은 개인 성향이나 조직 문화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비효율로 이어지고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글로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이 원칙은 계약 단계부터 분명하다. 계약서에 자주 등장하는 ‘Time is of the Essence’라는 문구는 일정 준수가 핵심임을 뜻한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신뢰가 먼저 흔들린다.
패션산업에서는 이런 변화가 더 또렷하다. 과거에는 반기별 시즌 캘린더를 기준으로 해 긴 호흡으로 움직였다. 이제는 트렌드 확산과 소비자 반응이 실시간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기획·생산·납기까지 전 과정은 압축됐고, 한 시즌 중에도 여러 차례 조정이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빠른 움직임만이 아니라 요구되는 시점에 정확히 실행하는 능력이다.
환경이 달라지면서 경영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과거처럼 중장기 계획을 충실히 따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때 옳았던 판단이라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순간을 알아보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시장의 시간, 고객의 시간, 거래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는 경영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최근 필자가 만난 한 대기업 CEO는 “서면 보고는 최대한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문서를 주고받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대면이나 유선을 통해 핵심만 공유하며 빠르게 판단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구조를 전환하고 있었다. 경영의 속도는 본질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갈린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기본이 필요하다. 한발 앞서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는 태도 그리고 제때 판단하고 실행하는 습관이다. ‘상대’는 외부 고객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직의 리더와 구성원, 시장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도 아우른다. 대전환의 시대, 경쟁력은 이들의 시간을 읽고 제때 움직이는 능력이다. 그것이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가 경쟁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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