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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박물관은 유물 보관소가 아니다

입력 2026-01-07 17:34   수정 2026-01-08 00:15

작년 말께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났다. 유 관장은 박물관 방문객이 급증한 것에 고무돼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650만7483명이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갔다. 1945년 개관 이후 최대 기록으로 세계 4위권이다. 유 관장은 K컬처의 진수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대중과 호흡하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 가령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와 제휴해 박물관 야외에서 패션쇼를 열고 싶은데, 여론의 역풍을 맞을까 망설여진다고 했다. 국가 중요 유산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패션쇼 개최하는 루브르
유 관장이 이런 걱정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창경궁 명정전을 세계신문협회 총회 만찬 장소로 내어준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당시 문화재청은 “세계 언론에 우리 고궁의 아름다움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지만,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인은 “문화재청이 임대사업자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트라우마를 감안하면 유 관장의 걱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문화강국’이라고 불리는 세계 주요 국가는 이미 국립 박물관과 고궁 등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이 박물관은 패션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살아 있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루브르는 매년 박물관의 야외 중정 쿠르 카레 등에서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패션쇼를 개최한다. 지난해에는 박물관 설립 이후 처음으로 패션을 단독 주제로 한 대규모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루브르와 루이비통의 협업은 박물관의 문화유산이 지닌 역사적 권위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적 가치를 결합해 서로 윈윈하는 모델을 구축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K컬처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이탈리아는 국가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화유산 유지·보수에 명품 브랜드의 자본을 활용하고 있다. 로마에 있는 비너스와 신전 복원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탈리아 명품 기업 펜디가 약 250만유로(약 42억원)의 공사비를 지원했다. 펜디는 그 대가로 복원이 완료된 뒤 이곳에서 패션쇼를 개최해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끌어올렸다.

대관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는 곳도 많다. 영국 대영박물관은 별도의 영리 자회사를 통해 전문적으로 대관 사업을 운영 중이다. 유럽 최대 실내 광장인 대영박물관 내 그레이트 코트를 중심으로 대규모 기업 행사를 유치한다.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은 아예 대관 가능한 공간과 시간, 요금, 수용 인원 등을 명시한 카탈로그를 배포하면서 대관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관 시간을 박물관 폐관 이후로 설정해 일반 관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야간 유휴 시간을 고수익 시간대로 만들었다.

세계 주요 선진국은 이처럼 문화유산을 철저하게 보존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막대한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이제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을 넘어 미래의 문화를 생산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K컬처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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