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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콘텐츠, 또 한 번 ‘러너스 하이’를 향해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6-01-11 10:47   수정 2026-01-11 10:48

요즘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시간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초반엔 잘 뛰다가도 점점 체력이 고갈되어 극한의 고통이 엄습하는 ‘데드 포인트(Dead Point)’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힘이 불끈 나며 큰 희열이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순간에 도달하게 된다.

K콘텐츠 시장도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다. 해외에 작품이 하나씩 알려지면서 시작된 한류는 데드 포인트를 수없이 넘기며 이어졌고 마침내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서게 됐다. 특히 지난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해외에서 제작됐지만 한국과 한국 문화를 다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K컬처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젠 한 차원 다른 마라톤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K콘텐츠는 2026년에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하며 힘차게 달릴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 곳곳에 암초가 자리하고 있어 그 과정에서 수많은 데드 포인트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를 극복하고 또 한 번의 러너스 하이를 만끽할 수 있을까?

상상력 기반 판타지물로 승부

올해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천천히 강렬하게’이다. 이 작품엔 7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6년 공개작 중 가장 많은 제작비에 해당한다. 회차도 OTT 시리즈로는 보기 드물게 긴 22부작에 달한다. 이 작품은 1960~80년대 한국 연예계를 배경으로 하며 가진 건 없지만 성공을 꿈꾸며 온몸을 던졌던 이들의 성장 스토리를 그린다. 노희경 작가가 집필하고 배우 송혜교, 공유, 차승원, 이하늬 등 인기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다른 드라마들의 라인업도 화려하다. 특히 올해는 ‘판타지물’을 중심으로 승부가 펼쳐질 예정이다. 판타지는 풍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해당 작품들을 통해 K콘텐츠가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품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 증명해 보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21세기 대군부인’, ‘재혼 황후’, ‘현혹’ 등이 공개될 예정이다.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입헌군주제의 대한민국을 그린다. 신분을 제외한 모든 걸 가진 재벌 희주(아이유 분)와 왕의 아들이란 신분 외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왕자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로맨스를 담았다.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재혼 황후’는 가상의 공간 동대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황후 나비에(신민아 분)가 황자 소비에슈(주지훈 분)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후 조건으로 인근 서왕국의 왕자 서인리(이종석 분)과의 재혼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드라마 제작이 결정됐을 때부터 큰 관심이 집중됐다. ‘현혹’ 역시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며 뱀파이어인 정화(수지 분), 정화로부터 초상화를 의뢰받은 화가 이호(김선호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타지물 가운데서도 로맨스가 많이 나오는 것은 K콘텐츠의 소재가 일상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본래 한국 드라마엔 로맨스가 많았지만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 이후 스릴러나 크리처물 등 장르물이 크게 증가했다. 물론 해외에서 인기 있는 장르물의 문법을 익히고 이를 변주하여 호평을 받은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장르물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시청자의 피로도를 높였고 차별화된 K콘텐츠만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굳이 해외 콘텐츠와 유사한 장르물만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로맨스와 같은 일반적인 정서와 감정에 기댄 작품으로도 충분히 승부수를 띄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드라마 시장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 대부분의 대작이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글로벌 OTT에 집중되어 있다. 특정 스타 배우들에게 러브콜이 집중되면서 제작비 상승 현상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새해 공개작 중 웹툰,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가 많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지식재산권(IP)을 적극 활용한 사례에 해당하며, 한국 콘텐츠 산업이 IP를 중심으로 한 선순환 체계를 잘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팬덤이 형성되고 증명된 작품 위주로만 제작한다는 측면에선 문제가 있다. 흥행 실패에 대한 부담은 줄일 수 있지만 그만큼 실험적이지만 참신한 이야기가 탄생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당장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위험 회피만 하다보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길고 긴 마라톤에서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새해엔 ‘천만 영화’ 탄생할까

영화 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힘겨운 데드 포인트를 지날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한국 극장가에선 국내외 영화를 포함해 1000만 영화가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 박스오피스 1, 2위도 해외 애니메이션인 ‘주토피아 2’,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 내줬다. 한국 영화 중 최고 순위는 3위 ‘좀비딸’로 563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도 크게 줄어 새해에 개봉하는 한국 상업 영화는 20여 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명 감독들이 출격해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 ‘추격자’, ‘곡성’ 등을 만든 나홍진 감독은 10년 만에 ‘호프’라는 영화로 돌아온다. 이 작품엔 7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에 해당한다. ‘호프’는 비무장 지대 인근에 외계 생명체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SF 영화이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이 출연한다.

‘휴민트’는 ‘베를린’, ‘모가디슈’에 이은 류승완 감독의 해외 로케이션 3부작 중 하나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등이 출연한다. 장항준 감독의 사극 ‘왕과 사는 남자’는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다.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등이 나온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도 개봉한다.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생존자들이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담았다. 전지현의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며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등이 출연한다.

영화 시장을 살리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구독형 영화관람권’도 눈여겨봐야 한다. 구독형 영화관람권은 관객들이 OTT처럼 극장에서 일정 금액을 내면 정해진 횟수만큼 자유롭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2027년 도입될 예정이다. 당장 시행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제도이므로 올해 제대로 된 논의와 정교한 시스템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

한류는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 방영되며 시작됐다. 그렇게 K콘텐츠는 벌써 30년 가까이 달려왔다. 그사이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고 글로벌 시장이라는 큰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100년을 더 달리기 위해선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2026년은 그 적기이자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새해에도 K콘텐츠가 작고 큰 데드 포인트를 잘 극복해 엄청난 환희의 러너스 하이에 도달하게 되길 바란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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