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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 매장서 창업한 '無수저'…'3無, 3不 정신'으로 이겨냈죠

입력 2026-01-08 16:50   수정 2026-01-09 02:33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76)은 국내 아웃도어산업의 탄생과 성장을 현장에서 만들어온 1세대 창업주다. ‘등산 장비 시장’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1970년대, 그는 서울 동대문의 3.3㎡(1평)짜리 가게에서 국산 배낭을 제작하며 길을 냈다. 시장도, 제품도, 고객도 없던 불모지에서의 선택은 이후 반세기 한국 아웃도어산업으로 이어졌고, 1995년 출범한 블랙야크는 그 궤적의 중심에 서 있다. 기술을 고집하며 중국·유럽으로 시야를 넓힌 행보는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인 도전이었다.

최근 강 회장이 책을 펴낸 것도 그 여정을 정리해 남기기 위해서다. 취업과 창업 앞에서 망설이는 젊은 세대와 후배 창업자들에게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어떤 판단으로 도전을 택했는지 전하고자 했다. 신간 <세상은 문밖에 있다>를 계기로 서울 양재동 블랙야크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책은 어떻게 쓰게 됐습니까.

“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진로 문제로 흔들리는 20·30대를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그냥 쉬는’ 청년이 70만 명에 이를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취업 말고도 창업이라는 길이 있고, 시선을 해외로 넓히면 기회는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 경험이 젊은 세대가 다시 밖으로 나설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1973년 동대문에서 1평짜리 의류점 ‘동진사’를 창업한 이야기는 지금 봐도 드라마틱합니다. 시장·소비자·상품이 없는 ‘3무(無)’ 상태에서 출발했다고요.

“계획한 창업은 아니었어요. 지인의 부도로 자리가 비었고, ‘내가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보증금만 마련해 가게부터 연 거여서 팔 물건도 없었어요. 점원으로 일하며 익힌 유통 경험을 살려 의류부터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가게에서 물건을 빌려다 파는 ‘데도리’를 하며, 손님이 찾는 건 동대문·남대문을 다 뒤져서라도 구해왔습니다. 그렇게 단골이 생겼습니다. 그때 마음먹은 게 ‘없습니다, 모릅니다, 안 됩니다’라는 말만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손님이 찾아온 이상 어떻게든 답을 내놓는 성의가 없으면 장사는 이어질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것이 지금 블랙야크의 ‘3무(無)·3불(不)’ 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2년 뒤엔 등산 장비 제작·판매에 뛰어들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 산은 늘 일상이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산을 찾았지만, 쓸 만한 배낭이 없어 미군 군용 배낭을 메고 다녔죠. 배낭이 불편해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원단을 사 직접 고쳐 쓰다 보니 주변에서 ‘팔아달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산 배낭 1호였죠. 처음 2년간은 기성복 장사로 버텼지만 여유가 생기자 등산 장비, 특히 배낭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공장은 없었지만 동대문 수선 인력과 함께 제작해 매장에서 직접 팔기 시작했고, 그렇게 등산 장비 사업이 출발했습니다.”

▷수출 기업이 돼 세계로 뻗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계기였습니다. 해외에서는 올림픽을 치르면 나이키·미즈노·아디다스처럼 자국 스포츠 브랜드가 성장했지만, 한국은 국내 브랜드 대부분이 무너졌어요. 시장이 너무 작고, 국민소득이 낮아 소비 여력이 없었던 거죠. 올림픽 이전까지는 해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체육사들이 무너지며 팔 곳이 사라졌고, 시장을 넓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유럽은 벽이 높았고 일본은 경쟁이 치열해 당시 아웃도어 시장이 거의 없던 중국을 택했습니다. 진출이라기보다 개척에 가까웠죠.”

▷1993년 첫 중국 진출은 실패로 끝났고, 1998년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과를 냈다고 했습니다.

“첫 진출 땐 중국을 소비 시장이 아닌 생산 기지로만 봤고 그 판단이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생산과 소비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5년 뒤 다시 도전했습니다. 톈진을 거점으로 삼고 베이징에 사무실을 열어 ‘중국에서 팔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습니다. 현지화의 출발점은 이름이었어요. 블랙야크 대신 ‘풍우설(風雨雪)’이라는 중국 이름을 쓰고, 만리장성 보호·복원 사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제품을 팔기 전에 사람과 문화에 먼저 다가서려고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업계 1위 자리를 내줬다가 2014년 다시 선두로 올라섰습니다. 위기를 돌파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중국 시장을 보며 한국 브랜드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분명히 느꼈어요.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기준에서 통하는 브랜드가 돼야 했습니다. 방향을 유럽으로 틀었습니다. 하지만 내부 반발이 컸기 때문에 기존 조직을 설득하기보다 새 팀을 꾸렸습니다. 대리급 직원 다섯 명으로 ‘5대리 TF팀’을 꾸려 유럽으로 보냈습니다. 직급·연차보다 실행력과 감각을 중시한 인적 쇄신이었죠.”

▷유럽 유명 브랜드들의 라이선스 판매 제안도 거절하셨다고요.

“돈만 생각했다면 라이선스 사업이 훨씬 쉽고 수익도 안정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블랙야크는 없었을 겁니다. 남의 브랜드를 키워주는 회사로 남았겠죠. 당시 한국 패션 기업 가운데 해외에서 브랜드로 자리 잡은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하청 구조에 머물러 있었어요. 저는 언젠가는 원청이 돼야 한다고 봤고, 그러려면 시장과 브랜드, 기술을 함께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렵고 더딘 길이었지만 돈보다 ‘우리 브랜드 하나를 제대로 만들자’는 목표를 택했습니다.”

▷코로나19 때 패션 중심으로 방향을 튼 결정을 후회한다고 쓰셨습니다.

“팬데믹으로 유럽·중국·한국 시장이 동시에 멈추면서 저 역시 흔들렸습니다. 내부에서 나온 ‘아웃도어보다 패션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겁니다. 2년 가까이 패션 중심으로 가봤지만 블랙야크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제품과 철학, 브랜드 이미지 모두 어긋났고 매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단했습니다. 스스로 브랜드 철학을 훼손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하는 결정 중 하나입니다.”

▷사업을 하며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다고 보십니까.

“특정한 한순간을 꼽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도 매일이 선택과 판단의 연속이고, 늘 부담입니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글로벌 브랜드는 수많은 고비를 넘으며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그 과정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래야 창업주가 떠난 뒤에도 철학과 시스템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풀무원을 자주 떠올립니다.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철학이 이어지고, 지분 구조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헛발질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게 결국 오래가는 기업을 만드는 힘이라고 봅니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한국에서 등산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젊은 세대도 산에 많이 가지만, 과거처럼 위험하고 전문적인 활동이 아니라 나들이에 가까운 문화가 됐습니다. 길이 정비되면서 혼자서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게 됐고, 전통적인 등산 장비의 필요성은 줄었습니다. 고민은 달라진 문화에 맞는 제품을 어떻게 제안할 것인가입니다. 가볍게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제공할지가 큰 과제입니다.”

▷책에 ‘한계에 부딪혀 일어설 용기를 잊은 젊은 경영인에게’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창업 과정에서 흔들리는 젊은 분들의 가장 큰 불안은 결국 돈입니다. 아이디어만으로 투자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가족·지인 등에게 빌린 돈을 ‘못 갚으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이 실패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압박에 짓눌려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창업을 결심했다면 이번에 안 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벌어서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불안을 견디는 배짱과 담대함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됩니다.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버티며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설지연/사진=최혁 기자

※인터뷰 전문은 아르떼 홈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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