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액 자산가들이 사각지대에 있던 해외신탁을 통해 역외탈세를 벌이다가 국세청에 적발된 대표적 사례다. 오는 6월 말까지 사상 첫 신고가 이뤄지는 해외신탁에 대해 과세당국이 탈세 적발 수단을 강화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규제 그물망을 바짝 조여 그동안 방치돼온 역외 탈세를 막겠다는 것이다.

8일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역외탈세 세무조사 추징액은 6조7178억원에 달했다. 국세청은 통상 각종 제보 등을 통해 연간 200여 건을 세무조사하는데, 적발 수단이 고도화되면서 추징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이 최근 수년간 주목해온 탈세는 신탁 구조를 활용한 방식이다. 신탁 명의로 금융계좌를 개설하면 FATCA(미국 해외금융계좌 신고법)나 CRS(금융계좌정보 자동교환협정) 같은 정보교환 체계를 통해 위탁자 정보가 자동 보고되지만, 신탁이 부동산·실물자산을 보유하면 포착이 어렵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탁은 겉으로 보이는 소유자(신탁사)와 실질적 주인이 달라 은닉성이 가장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것이 개정된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해외신탁 신고 의무화 제도다. 신고 대상은 2025년 이후 신규 설정된 신탁뿐 아니라 그 이전의 신탁이라도 위탁자가 신탁계약 해지권, 수익자 변경권 등 ‘실질적 지배·통제권’을 갖고 있는 재산까지 모두 포함된다. 첫 신고는 올해 6월 30일까지 끝내야 한다.
국세청이 해외신탁 신고를 법 개정을 통해 도입한 배경에는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2011년 도입 당시만 해도 525명이 11조5000억원을 신고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6858명이 94조5000억원을 신고했다. 15년간 신고 인원은 1206%, 신고 금액은 722% 급증했다. 지난해 개인은 6023명이 26조7000억원, 법인은 835곳이 67조8000억원을 신고했다.
제도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재 수위도 단계적으로 높일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고 첫해인 만큼 제재 수위를 세게 하기는 어렵지만, 해외금융계좌 신고제가 밟은 경로를 따라 단계적으로 강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해외금융계좌 신고가 2011년 도입된 후 과태료 한도 상향(1단계)→형사처벌 도입(2단계)→명단 공개(3단계)로 제재를 강화해 신고 건수가 급증한 전례를 따르겠다는 의미다.
국세청은 2024년 말까지 해외금융계좌 미신고자 821명에게 과태료 2633억원을 부과했으며, 104명을 범칙처분(통고처분·고발)했다. 지난해에는 신고의무 위반액 50억원을 초과한 기업인 네 명의 인적사항도 공개됐다.
과세당국은 자진 신고 독려와 함께 ‘지능형 적발 수단’ 개발에도 나섰다. 탈세 혐의자들이 악용할 수 있는 만큼 구체적인 수단은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올해부터 시행된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가 적극 활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CARF를 통해 한국 일본 영국 독일 등 48개국이 가상자산거래소의 외국인 거래 정보를 수집·공유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미신고 자산에 대한 효율적인 추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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