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과 영화계 인사들은 이날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출관 절차를 마친 뒤 서울 중구 명동성당으로 이동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장례에는 고인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동료 배우들이 함께한다.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의 정우성과 이정재가 각각 영정과 금관문화훈장을 들고 앞장서며, 설경구·박철민·유지태·박해일·조우진·주지훈 등이 운구를 맡는다. 오전 8시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주례로 추모 미사가 봉헌되고, 이어 공식 영결식이 거행된다.
영결식에서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김두호 이사가 고인의 생애와 활동을 정리해 소개한다. 조사는 배우 정우성과 장례위원장을 맡은 배창호 감독이 낭독하며, 장남 다빈 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모든 절차를 마친 뒤 고인은 경기 양평에 위치한 별그리다에 안장된다.
안성기는 1957년 다섯 살의 나이에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이후 아역 시절에만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성인이 된 뒤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170편이 넘는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반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스크린을 떠나지 않은 배우였다.
일찍부터 재능은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성인 배우로 전향한 뒤에는 이장호·임권택·배창호 감독 등과 함께 한국 영화사의 굵직한 흐름을 만들어갔다.
1980~1990년대는 그의 전성기로 꼽힌다.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하얀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에서 정의로운 인물부터 냉소적인 캐릭터까지 폭넓게 소화하며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영화계 세대 교체 속에서도 중심을 지켰고, 겸손한 태도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
2000년대 이후에도 존재감은 이어졌다. '무사', '취화선'을 거쳐 강우석 감독과 다시 손잡은 '실미도'는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이후에도 '라디오스타', '부러진 화살' 등 현실과 인간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에서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노년기에도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노장 배우로서 서사의 무게를 떠받쳤다.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 활동은 줄었지만, 2022년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수상 당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오래 배우로 살며 나이를 잊고 지냈지만, 이제는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고 있다"면서도 "다시 영화로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말 자택에서 사고로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별세 당일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장례 기간 동안 빈소에는 영화계 동료와 각계 인사,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랜 벗인 가수 조용필을 비롯해 배우와 감독, 정치·사회 각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고, 시민들을 위한 별도의 추모 공간에도 헌화와 조문이 이어졌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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