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접속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청소년 SNS 이용 제한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호주와 같이 청소년 SNS 이용 금지법 추진 가능성을 밝히자 논란이 촉발됐다. 많은 청소년이 SNS 중독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강압적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법적 규제의 실효성이 약한 데다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반론도 제기돼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 논쟁은 규제 정책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현실 속 피해 사례는 넘쳐난다. 새벽까지 SNS에 빠져 있다가 등교를 못 하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인스타그램에서 또래의 외모와 일상 게시물을 보고 끊임없이 자신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상실하는 것 또한 적잖은 부작용이다. SNS를 끊고 싶어도 학교, 학원, 친구 관계가 모두 SNS를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혼자만 빠져나오기 어렵다.
청소년이 혼자만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스스로 SNS의 해악적 굴레를 끊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사회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줘야 한다. 자녀의 건강과 발달을 걱정하는 부모로서는 절박한 일이다. 우리 국회에서도 청소년 SNS 일별 이용 한도를 설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이유도 그래서다.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이자 현재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정부와 국회가 이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이는 청소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왜곡된 디지털 환경으로부터 성장의 시간을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개입이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특정 활동을 제한해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문화권을 침해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된 끝에 결국 폐지 과정을 밟았다. SNS 금지법도 비슷한 전철을 따르게 될 것이다.
SNS는 게임보다 통제가 훨씬 어렵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페이스북, 스레드, 엑스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플랫폼이 있다. 새로운 SNS도 계속 등장한다. 카카오톡도 사용자 간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하는 SNS다. 규제 기준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에 따라 규제 대상이 크게 달라진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SNS 금지법을 시행하면 청소년은 부모 계정으로 가입하거나, 나이를 위조한 계정을 만들거나, 해외 VPN을 사용할 것이다. 법은 지켜지지 않고 회피 문화만 자라난다.
국제적 분쟁도 불가피하다.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의 규제에 수긍할 리 없다. 시장 접근성 제한, 기술적 제재, 법적 분쟁 등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청소년의 기본권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 정보 접근의 자유, 사회적 소통의 자유는 청소년도 향유해야 할 기본권이다. 청소년이 SNS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참여를 제한한다는 뜻이다.
해법의 중심은 교육이어야 한다. 알고리즘이 관심과 분노를 어떻게 증폭시키는지, ‘좋아요’와 댓글이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는 순간, 사용자는 더 이상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선택하는 주체가 된다. 청소년은 보호 대상이지만 동시에 성장의 주체다.
플랫폼 기업의 책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연령별 알고리즘 차등 적용, 기본 설정으로 강한 보호장치 제공, 데이터 수집과 추천 방식의 투명성 강화 등 실질적이고 자율적인 조치가 따라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전면 금지가 아니라, 이러한 책임을 제도적으로 견인하는 데 있다.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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