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서로 얽힌 채 발전했다. 인류는 오래도록 ‘고대’를 그리스·로마를 위시한 서양 문명과 중국·인도 중심의 동양 문명, 두 축으로 나눠 고찰했지만 이런 관점은 문명 간 빈번한 충돌과 접촉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라이문트 슐츠 독일 빌레펠트대 고대사 교수의 <떠오르는 세계>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교 보편사’라는 도전적인 고대사 서술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는 ‘유목’ ‘도시’ ‘제국’ ‘경제’ ‘종교’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발트해에서 중국해까지 이어진 유라시아 대륙의 2000년 역사를 살핀다. 마치 카메라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는 듯한 글쓰기 방식이다. 중국, 인도, 그리스·로마 등 전통적 문명 구분을 존중하되 다섯 개 키워드에 따라 중대한 상호 작용을 짚어낸다.
유목민을 역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주요 참여자 자리에 뒀다. 기존 역사가들이 유목민이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더러 역사에서 누락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저자는 얽힘의 역사, 즉 역사를 문명 간 상호 작용으로만 설명하는 관점과는 거리를 둔다. 접촉을 회피하며 고유한 문화와 질서를 고수한 문명이 일부라도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632쪽에 달하는 다소 도전적인 분량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틀을 깨는 대장정이기에 납득 가능하다. “역사는 무에서 비롯된 것이 없다”고 강조하는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중국의 철과 비단이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에 도달했다면 진시황의 병마용이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론은 왜 불가능한가? 실크로드 네트워크와 그 행위자들은 다른 지역에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장기적인 영향을 준 고유한 역사적 영역을 형성했을까?’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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