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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엘리자베스가 택한 것은 사랑이 아닌 존엄이었다

입력 2026-01-09 16:37   수정 2026-01-10 00:46

결혼은 가장 사적인 선택이자 사회·경제적 계약입니다. 사랑의 언어 뒤편에서 계층과 직업, 자산에 대한 셈이 은밀히 오고 갑니다. 딸이면 유산 상속조차 받지 못하던 19세기 영국에서는 이런 계산과 제약이 더욱 노골적이었겠지요.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그런 남성이 동네에 처음 들어서면, (…) 그는 당연히 여러 집안의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간주된다.”

1813년 출간된 제인 오스틴의 장편소설 <오만과 편견>은 ‘결혼은 로맨스 이전에 재산 문제’라고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이 소설은 지난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오스틴의 대표작이에요.

200년이 넘은 작품인데 드라마, 영화로 계속해서 만들어질 정도로 사랑받아요. 배우 콜린 퍼스가 동명의 BBC 드라마에서 입은 셔츠는 지난해 경매에서 2만파운드(약 3400만원)에 팔렸고, 넷플릭스는 이 소설을 6부작 드라마로 제작 중입니다. 영미권에서는 ‘제이나이트(Janeite·제인 오스틴 지지자)’ ‘오스틴 현상’이라는 말도 자주 쓰여요.

소설은 베넷 가문 둘째 딸 엘리자베스의 ‘남편감 찾기’ 여정을 다룹니다. 결혼이라는 젊은 여성들의 난제가 시대를 떠나 공감을 부릅니다. 마치 한 여성이 상반된 조건의 두 남자 사이에서 결혼 상대를 고민하는 내용의 소설, 양귀자의 <모순>이 1998년 출간 이후 255쇄 이상 찍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처럼요.

결혼으로 곧장 신분 상승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달라요. 19세기는 딸만 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유산이 상속되는 ‘한정상속’ 제도가 있던 시절이죠. 엘리자베스의 선택에는 어머니의 노후, 동생들의 장래가 걸려 있어요. 그런데도 엘리자베스는 부잣집 도련님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그의 청혼을 거절해요. 이후 오해를 풀고 결혼을 택합니다. 소설 내내 엘리자베스가 강조하는 건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결혼생활입니다. 낭만과 사치가 아니라 자율성을 흠모하죠. 사랑이나 결혼 앞에 ‘오만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당대 여성 독자들은 사랑과 조건을 모두 쟁취한 엘리자베스를 보며 대리만족했겠지요.

결혼 따위에 관심 없는 독자라도 소설 속 오만과 편견, 즉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은 곱씹게 됩니다. “허영심과 오만은 매우 달라. 종종 동의어처럼 쓰이긴 하지만. 허영심에 들뜨지 않아도 오만할 수 있어. 오만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더 연관되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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