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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까지 부동산담보대출액이 누적 1150조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대출 없는 집을 찾기 힘들단 얘기겠지요. 은행 대출을 받으면 부동산등기부의 을구에 채무자, 근저당권 설정자, 채권최고액은 채무액의 120%로 기재된 근저당권을 설정합니다. 근저당권이 설정된 집을 전세라도 놓으려면 임차인의 전세금을 선순위로 보장하기 위해 전세금으로 대출을 상환합니다.
근저당권은 익히 알려진 담보 설정 방식입니다. 집주인이 대출받으면서 채권자인 금융권에 담보를 잡히는 겁니다. 근저당이 잡혀도 대체로 대출금만 상환되면 별문제는 없습니다. 소유권은 여전히 집주인에게 있고 정 안 되면 부동산을 처분하면 됩니다. 집주인이 임대인으로서 계약을 맺고 책임을 지는 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위 대출과는 다른 형태가 있습니다. 바로 담보신탁입니다.
소유권 넘어가는 담보신탁
신탁은 단순히 대출을 받는 구조가 아닙니다. 신탁법상 신탁은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의 재산권을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통해 수탁자가 신탁 목적을 위해 재산권을 관리·처분하게 하는 것입니다(신탁법 제1조 제2항). 부동산 신탁에선 수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면 대내외적으로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완전히 이전됩니다. 담보를 위한 신탁 설정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임대인과 중개사가 임대차계약을 할 때 "대출이 좀 껴 있다"고 했는데 등기부를 떼어 보니 임대인이 위탁자인 신탁등기가 있다면,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다른 집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임대인, 더 이상 진짜 '주인'이 아니란 얘기라서지요.
진짜 주인은 '00신탁'이라고 등기부에 표시가 된 신탁회사입니다. 법적으로는 집주인은 돈을 빌리기 위해 신탁회사에 명의를 넘긴 무권리자입니다. 신탁계약에서는 '위탁자'라고 합니다.

돈 빌리기 어려우면 담보신탁 고려
그렇다면 위탁자는 왜 근저당권을 설정하지 않고 담보신탁을 하는 것일까요? 담보신탁을 하면 수탁자인 신탁회사에 신탁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고,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도 넘겨야 하므로 집주인에게는 불리합니다. 그래도 담보신탁을 했다면, 담보신탁을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담보신탁은 금융권의 요구에 따라 합니다. 금융권은 담보신탁을 선호합니다. 근저당권보다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신탁을 설정하면 집주인이 망해도 그 집은 신탁사의 소유이기 때문에 언제 나올지 모르는 집주인의 채권자들로부터 재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를 법률상 '도산절연 효과'라고 합니다. 집주인이 망해도 최소한 부동산만은 깨끗하게 건질 수 있기에 신탁을 선호합니다. 금융기관은 신탁등기가 된 부동산에 대해 더 쉽게 대출 승인을 해주고 금리도 더 저렴합니다.
또 하나는 공매의 용이성입니다. 근저당권은 법원 경매를 거쳐야 처분되지만, 담보신탁은 공매 등 금융권이 원하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처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파트가 아닌 빌라, 다가구주택, 전원주택은 담보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금융권에서 신탁등기를 요구하면 위탁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인중개사도 몰라... 중개 사고 우려도
문제는 담보신탁의 의미를 공인중개사가 잘 모르고 대출처럼 중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담보신탁된 부동산을 임차하려면 임대인을 신탁사로 하고, 신탁사 대표이사 명의로 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소유자'를 기준으로 보호 대상을 정합니다.
그런데 신탁등기가 되어 있으면, 위탁자는 당연히 소유자가 아닙니다. 실제 소유자인 수탁자, 즉 신탁사가 임대차계약의 당사자여야 법적 보호가 가능합니다. 현실에선 여전히 위탁자가 임대차계약서에 임대인으로 등장하고, '임대인은 잔금과 동시에 신탁을 말소하기로 한다'는 식의 특약만 기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계약금과 잔금을 지급해도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없고, 임대인이 받은 돈을 소비해버리면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로 입주하더라도 신탁사의 사전동의나 사후승인이 없으면 신탁사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책임은 중개사에게 돌아옵니다.

신탁등기 설명 안 한 공인중개사 책임은
중개사가 책임을 진 사례도 있습니다. 부산에서 오피스텔을 임차한 A씨는 공인중개사의 중개로 신탁된 오피스텔에 대해 보증금 8000만원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임대인은 받은 보증금으로도 신탁등기를 말소하지 않았고, A씨는 이사를 나간 후 보증금을 돌려달라며 공인중개사와 공제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대법원은 항소심을 뒤집고,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임대인은 임차인의 잔금과 동시에 신탁사항 및 소유권 이외의 권리사항을 말소키로 한다"는 기재만 있을 뿐, 피고가 신탁관계를 조사하거나 신탁원부를 제시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법적 의미와 효과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보증금 반환 여부는 계약의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성실히 설명했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보증금을 미리 지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결국 공인중개사협회는 A씨에게 보증금의 70%를 지급했습니다.
수탁자인 신탁사와 명시적인 승낙 없이 이루어진 임대차계약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도, 우선변제권도 없습니다.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는 주택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신탁등기가 되어 있다면, 계약서상 임대인에 신탁사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임대차계약서에 신탁사 도장이 없는데도 보증금을 보내도록 했다면 공인중개사가 당장 멱살을 잡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신탁은 단순한 대출이 아닙니다. 대출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를 모르고 계약했다가 전세금을 떼이면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전세금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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