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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에세이] 금융의 본질을 생각하다

입력 2026-01-11 16:54   수정 2026-01-12 00:07

새해를 맞아 우리 업(業)인 금융의 본질을 되물어본다. 금융의 어원은 ‘끝내다’를 뜻하는 라틴어(finis)다. 빚을 갚고 거래를 말끔히 종결짓는 행위, 그것이 금융의 시작이었다.

오랫동안 인류가 거래 종결을 위해 활용해 온 수단은 오직 ‘무게’뿐이었다. 금본위제 시대, 화폐의 가치는 은행 금고에 쌓인 금괴의 중량만큼만 증명됐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황금만이 거래에서 유일한 ‘신뢰의 징표’였다. 이는 가장 확실하지만, 동시에 ‘금을 가진 자만이 신뢰받는다’는 배타적인 믿음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금태환제 종료로 화폐와 금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금융은 대전환을 맞았다. 실물의 닻을 잃은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되지 않았던 건, 인류가 ‘물질’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념’으로 거래를 종결짓는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금융의 핵심인 신뢰의 근거는 눈에 보이는 금에서 보이지 않는 신용(credit)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 거대한 금융사의 축소판을 인도에서 매일 목격한다. 인도는 금 애착이 유별난 나라다. 시골 농부들은 은행 예금 대신 금을 장롱에 모은다. 단순한 관습이 아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이 농촌 구석구석까지 ‘신뢰의 그물’을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증명할 길이 없는 이들에게, 은행의 약속보다 내 손안의 금붙이가 훨씬 믿음직한 것이다. 바로 금융 소외의 본질이다.

하지만 점차 인도의 서민들은 금을 팔지 않고도 핀테크를 통해 자신의 신용을 증명하고 있다. 금본위제에서 신용화폐로 넘어온 과정과 유사하다. 핀테크가 만들어낸 데이터가 새로운 시대의 ‘디지털 금’이 돼 신뢰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은행이 고객에게 “변제 능력을 금(담보)으로 증명하라”고 요구했다면, 인도에서 어피닛과 같은 핀테크 서비스는 “당신의 데이터로 보여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12년간 인도에서 수억 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통신료를 꼬박꼬박 내는 성실함, 앱 사용 패턴 같은 비금융 데이터 속에 숨겨진 ‘상환 의지’를 인공지능(AI)으로 발굴해냈다.

결국 핀테크 서비스의 본질은 금융과 같다. ‘담보가 없는 사람’을 ‘신용이 있는 사람’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은 단순히 금융상품 소개와 중개에 그치지 않는다. 금이라는 물리적 증거가 없어도, 데이터라는 디지털 증거를 통해 “당신은 믿을 만합니다”라고 사회적 신용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2026년, 어피닛이 인도 시장에서 쏘아 올릴 AI 혁신의 목표도 여기에 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정확하고 공정한 ‘신뢰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금고에 금이 가득해도 신뢰가 없으면 뱅크런이 일어나지만, 금이 없어도 신뢰가 단단하면 금융은 흐른다. 황금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신뢰다. 인도 전역에 금융 신뢰가 더 퍼져나가도록 하는 것, 올해의 목표이자 우리 업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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