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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전쟁 4번 겪고도…이스라엘은 어떻게 6만弗 국가가 됐나

입력 2026-01-11 17:49   수정 2026-01-12 00:52

이스라엘은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가 400개가량 밀집한 나라다. 단위면적당 개수로 세계 1위다.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약 10㎞ 떨어진 이스라엘 중앙부의 피투아흐에는 애플의 반도체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고성능 칩 M시리즈의 설계가 여기서 나온다. 엔비디아가 이스라엘에 꾸린 R&D센터는 총 7개에 달한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라고 말한 그래픽처리장치(GPU) 네트워크 기술이 요크네암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글로벌 빅테크는 이스라엘이 이란·하마스 등과 전면전을 펼치는 와중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미국 빅테크 생태계의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자리 잡은 미들파워 이스라엘의 저력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자의 본능’ 존중
이스라엘이 미국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탈 수 있었던 것은 30년가량 치밀하게 전개된 국가 전략 덕분이다. 시작은 1993년 국부펀드인 요즈마펀드를 설립하면서부터다. 당시 금융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스라엘은 외국 자본이 절실했다. 국토 면적 약 2만2100㎢로 한국의 5분의 1 정도 크기에 인구가 1000만 명 남짓인 이스라엘이 보유한 경쟁력은 미국과 유럽 일대에 퍼져 있는 유대계 인맥뿐이었다. 요즈마펀드 창립자들은 미·유럽 대형 벤처캐피털(VC)에 파격적인 제안을 내밀었다.

정부와 민간이 4 대 6 비율로 투자하되 실패 위험은 이스라엘 정부가 지고, 성공의 과실은 VC 등 민간이 대부분 가져간다는 청사진이었다. 펀드 자금을 받은 기업이 성장해 투자금을 회수할 때가 되면 민간 투자자가 정부 지분 전량을 ‘원금+약간의 이자’만 주고 살 수 있도록 보장했다. 현재 운용자산 125조원 규모인 미국 어드벤트인터내셔널 등 글로벌 큰손이 텔아비브로 몰려들었다. 5년 뒤 시장이 형성되자 정부는 약속대로 펀드를 민간에 매각하고 철수했다. 정부는 출연금뿐 아니라 이자까지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매년 이스라엘에 투자되는 벤처투자 자금의 93%는 해외에서 나온다. 이스라엘 VC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갈 에를리흐 요즈마그룹 회장은 “‘투자자의 본능’을 최대한 존중했다”며 “해외 VC를 단순한 자금원이 아니라 공동 운용자로 초대해 기업 육성, 글로벌 네트워크를 전적으로 맡겼다”고 말했다.
50년 이상 가는 자금원
미국과 공동 조성한 연구개발 펀드도 이스라엘이 기술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한몫했다. 1977년 설립된 ‘BIRD재단’(이스라엘·미국 산업연구개발재단)은 국가 간 연구개발 협력기금의 ‘원조’로 꼽힌다. 양국 정부가 50%씩 출연해 조성한 1억1000만달러의 기금은 50년 넘게 마르지 않는 자금원 역할을 하며 1000건에 달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개발비를 지원했다.

성공하면 정부가 기술 로열티만 일부 받는 이 공동 기금은 이스라엘 기술을 세계 최대 시장과 자금력을 갖춘 미국에 수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슐로미 코프만 이스라엘 혁신청 부청장은 “양국의 보증은 신뢰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파트너는 이스라엘 기술에 접근하고, 이스라엘은 글로벌 시장과 스케일업·상용화 역량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협업의 성과는 이스라엘 국적의 나스닥시장 상장사 수로 증명된다. 총 121개로 미국, 캐나다,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11일 기준 한국은 6개에 불과하다. 코프만 부청장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글로벌을 지향한다”며 “스타트업의 핵심 자산은 인력이기 때문에 인수 후에도 이스라엘 내 R&D센터를 유지하거나 확장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막강 인재 네트워크가 최대 자산
글로벌 큰손과 빅테크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돈을 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의 막강한 인재 네트워크다. 이스라엘 정부는 ‘마그시밈’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고교생 때부터 상위 1% 인재에게 사이버 보안과 인공지능(AI)을 가르친다. 에를리흐 회장은 “언제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을 통해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융합을 강조한다”며 “불확실성을 편안하게 여기고 복잡한 문제를 혁신적 솔루션으로 바꾸려는 동기가 여기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졸업 후 정보부대 8200부대나 9900부대, 맘람 등으로 징집된다. 3년간의 병영생활은 사실상 딥테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기술적 해법을 두고 상관과 논쟁할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강조된다. 사이버보안 기업 울트라레드의 에란 슈타우버 CEO는 “젊은 나이에 8200부대에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배웠다”며 “수십 명의 사이버해킹 팀을 이끌 수 있었던 것도 대학에선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라고 말했다.

인재에 자본이 더해지자 이스라엘은 2019년부터 스케일업으로 정책 목표를 넓히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 이후 기업을 더 키울 수 있도록 제대로 돕지 못하면 창업자와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이스라엘은 지난해부터 ‘요즈마 2.0’이란 이름으로 자국 기관투자가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무조건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판을 다시 짰다. 기관투자가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30%를 국비로 매칭해주고, 펀드 청산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정부는 원금만 회수하고 수익은 투자가에게 몰아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전략 덕분에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는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진출입이 활발하다. 지난해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연간 인수합병(M&A) 규모는 800억달러로 예년(150억달러)을 크게 웃도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한정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은 “한국이 미들파워의 허브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제조 강국의 하드웨어 경쟁력 위에 이스라엘식 ‘연결’과 ‘원천 기술’ 전략을 입혀야 한다”고 말했다.

텔아비브=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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