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민간이 4 대 6 비율로 투자하되 실패 위험은 이스라엘 정부가 지고, 성공의 과실은 VC 등 민간이 대부분 가져간다는 청사진이었다. 펀드 자금을 받은 기업이 성장해 투자금을 회수할 때가 되면 민간 투자자가 정부 지분 전량을 ‘원금+약간의 이자’만 주고 살 수 있도록 보장했다. 현재 운용자산 125조원 규모인 미국 어드벤트인터내셔널 등 글로벌 큰손이 텔아비브로 몰려들었다. 5년 뒤 시장이 형성되자 정부는 약속대로 펀드를 민간에 매각하고 철수했다. 정부는 출연금뿐 아니라 이자까지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매년 이스라엘에 투자되는 벤처투자 자금의 93%는 해외에서 나온다. 이스라엘 VC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갈 에를리흐 요즈마그룹 회장은 “‘투자자의 본능’을 최대한 존중했다”며 “해외 VC를 단순한 자금원이 아니라 공동 운용자로 초대해 기업 육성, 글로벌 네트워크를 전적으로 맡겼다”고 말했다.
성공하면 정부가 기술 로열티만 일부 받는 이 공동 기금은 이스라엘 기술을 세계 최대 시장과 자금력을 갖춘 미국에 수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슐로미 코프만 이스라엘 혁신청 부청장은 “양국의 보증은 신뢰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파트너는 이스라엘 기술에 접근하고, 이스라엘은 글로벌 시장과 스케일업·상용화 역량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협업의 성과는 이스라엘 국적의 나스닥시장 상장사 수로 증명된다. 총 121개로 미국, 캐나다,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11일 기준 한국은 6개에 불과하다. 코프만 부청장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글로벌을 지향한다”며 “스타트업의 핵심 자산은 인력이기 때문에 인수 후에도 이스라엘 내 R&D센터를 유지하거나 확장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졸업 후 정보부대 8200부대나 9900부대, 맘람 등으로 징집된다. 3년간의 병영생활은 사실상 딥테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기술적 해법을 두고 상관과 논쟁할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강조된다. 사이버보안 기업 울트라레드의 에란 슈타우버 CEO는 “젊은 나이에 8200부대에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배웠다”며 “수십 명의 사이버해킹 팀을 이끌 수 있었던 것도 대학에선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라고 말했다.
인재에 자본이 더해지자 이스라엘은 2019년부터 스케일업으로 정책 목표를 넓히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 이후 기업을 더 키울 수 있도록 제대로 돕지 못하면 창업자와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이스라엘은 지난해부터 ‘요즈마 2.0’이란 이름으로 자국 기관투자가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무조건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판을 다시 짰다. 기관투자가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30%를 국비로 매칭해주고, 펀드 청산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정부는 원금만 회수하고 수익은 투자가에게 몰아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전략 덕분에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는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진출입이 활발하다. 지난해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연간 인수합병(M&A) 규모는 800억달러로 예년(150억달러)을 크게 웃도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한정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은 “한국이 미들파워의 허브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제조 강국의 하드웨어 경쟁력 위에 이스라엘식 ‘연결’과 ‘원천 기술’ 전략을 입혀야 한다”고 말했다.
텔아비브=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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