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5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란 이름이 붙은 그룹 명단을 발표한다. 정부가 공식 인증한 대기업 리스트다. 명예와 규제가 동시에 뒤따르는 이 명단에는 지난해 기준 ‘총자산이 국내총생산(GDP)의 0.5%(11조6000억원) 이상’인 그룹 46개가 들어 있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한화 등 한국을 선진국 반열로 이끈 전통 그룹 사이에 카카오, 셀트리온, 네이버, 쿠팡, 미래에셋, 하림, 호반건설, 넷마블 등 ‘창업 1세대’가 경영하는 기업도 여럿 이름을 올렸다.가입을 권유한 이 임원은 “창업가는 회원사의 주류인 재벌 2·3세와는 출발부터 다르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상당수 창업가는 2·3세 경영인들을 ‘곱게 자란 도련님’으로 여긴다고 한다. 일부 창업가가 “한국에서 창업가(founder)와 기업가(enterprenuer), 경영인(management)이 같은 뜻으로 통용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창업가’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사업을 키우는 ‘기업가’가 될 수 있지만, 회사를 물려받은 재벌 2·3세는 아무리 회사를 키워봤자 그저 수완이 좋은 ‘경영인’에 그친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척박한 국내 경영 환경을 딛고 맨손으로 큰 기업을 일궈냈으니, 잘 구축된 시스템을 갖고 출발한 2·3세 경영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금 내고, 일자리 만들고, 한국의 위상을 높인 창업가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요즘 곳곳에서 ‘기업가정신 회복’을 부르짖는 것도 한국 근대화를 이끈 이병철, 정주영, 최종건, 구인회 같은 걸출한 ‘창업 영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의 발로다.
LS, 한진그룹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호반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초 자회사 대한전선과 소송 중이던 LS전선의 모회사 LS 주식 약 4%를 샀다. ‘소송 상대방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비난이 커지자 호반은 “전선 산업의 미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호반은 별다른 해명 없이 LS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1000억원대 평가이익을 챙겼다.
격이 중요해지는 이 시대의 대기업은 그저 자산 규모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순히 돈벌이만 생각하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만이 한국 경제를 이끄는 대들보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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