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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생의 참맛에 대해 묻는다면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입력 2026-01-13 16:51   수정 2026-01-14 00:24


살아보니 인생은 쓰다거나 달다고 할 수만은 없다. 양지와 음지를 오가지 않은 채 인생을 섣불리 예단하는 건 경솔한 태도다.

겪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내 경우 반 고비 나그넷길에 후반생이 시작하는 마흔쯤에서야 겨우 미궁 같은 인생을 두고 한두 마디 보탤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둔한 내가 감히 인생의 진경을 겪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막막하고 불안했던 인생 후반기
베이비 부머로 태어나 격류같이 흘러간 전반생은 어지러울 만큼 변화의 진폭이 컸다.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 구석에서 시와 철학을 독학하며 청년기를 보냈는데, 눈물 젖은 우동 국물을 먹으며 시 몇 줄에 인생을 걸던 그 시절 내 눈빛이 가장 총명하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른 나이에 등단을 하고 출판사 편집부에 취업했다. 이어서 젊은 나이에 출판사 창업과 폐업을 겪는 동안 인생은 난바다처럼 출렁거렸다. 갸륵하지도 비천하지도 않은 전반생을 보내고 후반생을 맞았는데, 그 막막한 시기에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다.

누구와 어떤 밥을 먹을지 모르는 후반생은 기대나 설렘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더 컸다. 헤엄도 못하는 상태로 강물에 뛰어든 아이같이 심란했다. 후반생 초입에 홍어앳국이라는 음식을 먹은 것은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처음 먹어보는 홍어앳국을 뜨며 왠지 전반생과는 다른 후반생이 펼쳐질 거라는 예감이 스쳤다. 이것은 동무들과 여행을 가서 홍어앳국을 시식한 경험이자 막막하고 쓸쓸했던 인생 후반기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얼었던 내와 하천이 풀리며 개나리 가지에 풀씨보다 작은 노란 꽃망울이 맺히는 이른 봄날, 마흔 줄의 동무들 몇이 어울려 춘흥에 취해 길을 나섰다. 기차를 타고 한반도 서남 지역인 목포역에 내렸는데, 목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시인이 마중을 나왔다. 마침 밥때라 시인이 안내한 식당으로 몰려갔다. 목포 시인이 대뜸 “목포는 홍어가 별미지요!”라며, 나를 콕 집어 “홍어 좋아해요?”라고 물었다. 나는 충청도의 끝 간데없는 들과 내륙의 황토에서 캐낸 구황작물이나 먹고 자란 탓에 먹어보지 못한 홍어를 두고 좋다거나 싫다거나 할 수 없었다.
남도에서 처음 맛본 홍탁삼합
홍어를 먹어보자, 하고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목포 구도심의 노포였다. 흑산도 홍어만을 받아다 쓰는 홍어전문집이라고 했다. 이윽고 남도의 풍성한 인심을 실감할 만한 한 상에 회처럼 썬 홍어와 두툼한 돼지고기가 나왔다.

나는 남들이 하는 대로 홍어 한 점과 새우젓을 찍은 돼지고기를 묵은지에 싸서 한입에 넣었다. 홍어의 살은 분홍빛이 돌고 맛은 달큰했다. 그 뒷맛은 강렬했다. 홍어를 다 씹기도 전에 매운 암모니아 향이 톡 쏘며 콧구멍으로 터져 나왔다. 누군가 방금 먹은 게 홍어삼합이라고 했다. 거기에 막걸리를 더한 게 홍탁삼합인데, 목포 시인은 그걸 호남의 별미라고 했다.

홍어는 흑산도 바다에서 잡은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흑산도 홍어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비싼 탓에 음식점들이 흑산도 홍어 대신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것을 쓴다고 했다. 한 책을 읽다가 홍어를 먹는 대목에서 눈길이 머문다. “북풍받이 서까래에 가는 새끼줄로 코를 꿰어두고 칼로 베어다 기름소금이나 초장에 찍어 먹”고, “처음에 먹고, 항아리 속에 던져뒀다 삭혀도 먹고, 걸어두고 말려가면서도 먹고, 남은 것들 다 처넣고 탕으로도 먹”는 게 홍어라 했다.(이혜숙, <계절을 먹다>, 글항아리, 2023)

미끈덩한 물질을 칼로 살살 긁어낸 뒤 살은 회를 뜨거나 듬성듬성 썬 것을 미나리나 도라지, 무생채와 고추장에 버무려 조물조물 무치고, 찜으로 쪄낸 홍어 살을 젓가락으로 떼 내고 양념장을 찍어 입에 넣어도 좋다고 했다. 홍어는 살만 아니라 코, 날개, 꼬리를 두루 먹으니 어느 한 군데 버릴 데가 없다. 세상에 이토록 기특한 생선이 또 있을까 싶다.
쓸쓸한 마음을 감싸는 홍어앳국
애는 홍어 간이다. 홍어앳국을 끓이는 애는 국산을 쓴다. 싱싱한 것을 써야 하는 까닭이다. 배를 갈라 분홍색이 도는 애를 꺼내 잘 씻어 이른 봄 보리싹 한 줌을 끊어다 넣고 된장과 고춧가루 따위로 양념을 해서 한 솥 끓여내는데, 그게 남도식 진짜배기 홍어앳국이다. 보리싹을 넣고 끓인 국물은 목구멍이 아플 정도로 칼칼했다.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로 나오는 특유의 향, 들큰하고 기름진 식감이 일품인 홍어의 맛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날 나는 국물을 입에 가져갔다가 단박에 입천장이 벗겨지는 낭패를 겪었다.

우리는 혀로 맛을 분별한다고 믿지만 혀는 감각 정보를 뇌에 전할 뿐이다. 맛을 결정하는 것은 혀가 아니다. 미각은 뇌에 쌓인 맛의 기억과 반복 학습의 결과물로 빚어진다. 혐오 음식이라 할 만큼 강렬한 풍미를 가진 홍어앳국의 첫 미식 경험을 잊기는 어렵다. 홍어앳국을 뜨며 정신이 번쩍 났다. 과연 나는 홍어앳국의 참맛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개망초같이 쓸쓸한 마음을 감싸는 음식이라면 좋은 음식일 테다. 홍어앳국의 향과 맛, 압도적인 식감 때문에 홍어앳국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테다. 누군가는 기겁하고 손을 내젓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못 잊을 소울푸드일 테다.

어떤 음식과도 견줄 수가 없는 맵고 달큰하며 오묘한 홍어앳국이야말로 인생의 참맛이라고 할 만하다. 대체 불가능한 불행을 겪어 본 자만이 인생의 참맛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누가 인생의 참맛을 묻는다면 이른 봄날 목포에 가서 흑산도 홍어 애와 갖은양념을 한데 넣고 한솥 잘 끓여낸 홍어앳국을 시식해 보라고 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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