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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사적인 눈이 공공의 기억이 되는 순간

입력 2026-01-13 17:06   수정 2026-01-14 00:25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Korean National Treasures: 2,000 Years of Art’는 단순한 해외 전시가 아니다. 이 전시는 한국 미술의 정수라는 결과물 이전에 그것이 어떻게 공공의 자산이 됐고, 어떤 경로를 통해 세계로 이동하게 됐는가를 함께 묻는 사건에 가깝다.

워싱턴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는 흔히 국가가 처음부터 기획한 국립미술관으로 여겨지지만, 그 출발점에는 앤드루 멜런이라는 한 개인의 컬렉션이 있었다. 그는 유럽에서 수집한 회화와 조각을 정부에 기증하며, 미국 사회가 스스로를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남겼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 역시 한 가문의 집요한 수집에서 출발해, 프라도와 레이나 소피아 사이의 미술사적 공백을 메우는 중심축이 됐다. 이 두 사례는 개인의 안목이 공공의 기억으로 전환되는 순간,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사회의 문화적 자의식을 형성하는 제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국보와 보물급 유산이 대규모로 해외에 소개된다는 점은 문화 외교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한국 문화가 더 이상 설명돼야 할 주변부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 미술사 안에서 동등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주체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 회화와 불교 미술, 도자와 왕실 미술은 한국적 특수성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자연과 권력, 초월을 어떻게 시각화해 왔느냐는 보편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이 유산이 국경을 넘어 세계의 공공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이 응답은 비로소 공유되고 확장된다.

오늘날 세계가 한국 문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음악, 드라마,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다. 빠르고 감각적이며 즉각적인 공감을 만들어내는 이 문화들은 전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이런 에너지와 감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한다. 한국 문화의 현재를 설명하기보다, 그 현재가 어떤 시간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며, 오늘의 K문화가 결코 갑작스럽게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깊고 오랜 미학적 감각과 사고방식 위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한국의 고미술은 관객에게 즉각적인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백은 설명을 미루고, 화면은 시선을 늦추며, 의미는 서둘러 닫히지 않는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낮추고 자신의 시선을 조정하게 된다. 이 전시는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주의를 재배치하고, 반응보다 머무름을, 소비보다 해석을 요구한다. 이런 경험은 강렬해서가 아니라 미완이기에 오래 남는다. 대중문화가 세계의 관심을 촉발했다면, 고미술은 그 관심을 깊이로 전환한다.

이건희 컬렉션은 젊은 한국 작가들이 세계와 만나는 조건 역시 바꾸고 있다. 그동안 많은 작가는 자신의 출발점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고미술을 통해 한국 미술의 장기적 서사가 공유되면, 설명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작가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증명하는 대신,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지를 바로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대규모 고미술 전시는 ‘문턱’을 낮춘다기보다 ‘좌표’를 바꾼다. 한국 미술이 오랜 시간 자연, 여백, 비물질성, 절제와 시간성을 고유한 방식으로 다뤄왔다는 사실은 젊은 작가들을 이미 축적된 미학적 전통의 연장선에서 작업하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게 만든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사적 소유가 공공의 기억으로 전환되는 순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작품들이 교육과 연구, 젊은 작가와의 실험으로 이어질 때, 미래를 위한 문화 인프라가 된다. 해외 순회가 전시를 출발점으로 현지 대학과 연구기관, 미술관으로 확장될 때, 이 컬렉션은 단기 이벤트를 넘어선다. 작품이 이동한 자리마다 지식의 흔적을 남길 때, 이번 전시는 국가 이미지 개선을 넘어 국제적인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다. 미래 세대가 세계 속에서 한국 문화를 만나는 지속적인 통로를 구축하는 데 이번 전시가 각별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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