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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부한 것 아니다"…서울대에 1000억 쾌척한 '쎈' 회장님 [일문일답]

입력 2026-01-13 19:03   수정 2026-01-13 19:09


‘내가 가진 지식을 도서산간에 사는 학생들에게까지 저렴하게 나눠줄 방법이 없을까.’

서울대 수학과(현 수리과학부) 출신 서울 강남의 학원강사였던 홍범준 좋은책신사고 대표는 1990년 무작정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책을 찍을 종이값이 없어 어음을 끊을 정도로 시작은 쉽지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사업이지만 원칙은 분명했다. 학생들에게 ‘기본’을 심어주는 책을 만들자는 것.

1992년 첫 제품인 ‘서울대 수학’으로 참고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초·중·고 전 과목 참고서 ‘신사고’와 ‘우공비’, 수학문제집 ‘쎈’ 등 히트작 행진을 이어갔다. 홍 대표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기초과학의 기본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서울대는 13일 좋은책신사고가 서울대에 ‘발칙한 자연과학적 상상과 수리 논증을 위한 무주·쎈 연구기금’ 1000억원을 쾌척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대학 단일 기부액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이날 기부협약식에 참석한 홍 대표를 만나 기부에 나선 배경과 기금의 희망 사용처에 대해 들어봤다.


▷희망하는 기금 사용처로 기초과학 분야를 꼽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최근 원화 가치가 하락했습니다. 근원기술 경쟁력이 뒤처진 결과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이를 끌어올리려면 기초과학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기초과학 경쟁력을 키우고, 그 성과가 응용과 산업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뛰는 데 필요한 씨드머니를 내놓겠다는 취지로 기초과학 분야에 쓰이길 희망했습니다."

▷금액이 1000억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일 예정인가요.

"500억원은 연구인력비와 연구비로 쓰일 겁니다. 노벨상이나 필즈상 같은 성과를 내려면 세계적 석학을 초빙해야 합니다. 박사후연구원을 채용해 젊은 연구자도 길러야 하고요. 연구인력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머지 500억원은 연구 공간을 확보하는 데 쓰일 겁니다."

▷한국에서 필즈상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본원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 작은 물질 입자로 ‘A’가 발견됐다고 해봅시다. 틀 안에서 공부해온 사람들은 ‘가장 작은 입자= A’라고 배워왔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정말 그게 가장 작은 걸까?’라는 화두를 던져야 합니다. 그 질문에서 연구가 시작됩니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더 작은 입자가 발견되고, 노벨상 같은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겠죠.”

▷기금 이름이 ‘무주·쎈 연구기금’입니다.

"‘쎈’은 좋은책신사고의 대표 학습서 브랜드입니다. ‘무주(無住)’는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입니다. 1000억원이 큰 기부라고들 하는데, 저는 제가 기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부라는 건 누군가에게 주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누구에게 준다기보다, 돈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한데요. 기초과학으로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어떤 동기부여가 필요할까요.

"중요한 건 내적 동기입니다. 내적 동기가 없는데 연구실에 가둔다고 노벨상이 나오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의대에 갈 학생은 의대로 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우수한 인재들 가운데 의대를 간 학생들이 신약 연구에 도전했으면 합니다. 몇몇 환자를 치료하는 데서 나아가 인류에 도움이 되는 약을 개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 기부가 다른 기업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길 바라십니까.

"제가 ‘기부하라’고 말하기엔 주제넘습니다. 다만 ‘내 것이라는 건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기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저는 돈이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무주’를 실천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무주·쎈 바둑대회'를 열어 인공지능과 이세돌의 재대결을 성사시키고 싶습니다. 지난번 대국은 ‘반칙’이었다고 봅니다. 알파고는 과거 수백만 개의 기보를 학습한 상태로 왔으니까요. 컨닝페이퍼를 쥐고 바둑을 두는 셈이죠. 이세돌은 홀로 맞섰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의미에서 알파고와의 재대결을 성사시키고 싶습니다."

이미경/고재연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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