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을 '춤 열풍'으로 이끌었던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내로라하는 댄서들이 대거 출연했던 해당 프로그램에서 짙은 화장에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시청자들을 압도했던 코카앤버터의 리더 리헤이가 무대를 옮겨 뮤지컬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노래 잘하는 댄서'로 잘 알려져 있었다. 고등학생 때 청소년 가요제에서 1등을 차지했고, 2022년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깜짝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시지프스'로 뮤지컬과 첫 인연을 맺었다. 최근 서울 대학로 모처에서 만난 리헤이는 "뮤지컬은 상당히 어렵고 또 섬세하다. 뭐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 엄청나게 얇은 유리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분들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더라. 스트릿 댄서다 보니까 춤을 출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게 많았다.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고, 반응도 즉각적으로 보이는 게 너무 설렜다. 나의 표정, 움직임, 손끝, 발끝까지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거니까 내게 더 집중할 수 있다. 재미있게 공연에 임하고 있다"며 웃었다.
연습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시작했다고. 연습 당시를 떠올리며 리헤이는 "댄서이기 때문인지 칭찬받았던 부분은 움직임이었다"고 전했다. 반면 한 번도 경험이 없었던 연기에 대한 두려움은 컸다고 했다. 리헤이는 "연기를 한 건 '시지프스'가 처음"이라면서 "뮤지컬이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부분도 당연히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피할 수 없으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도전했다"고 털어놨다.
리헤이는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 밝혔다. 그 이유를 묻자 "다재다능한 장르이지 않나. 춤도 추고, 말도 해야 하고, 또 노래도 잘해야 하고 표정도 잘 써야 한다. 밖으로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를 다 써야 한다는 게 멋있었다. 존경심이 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뮤지컬과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춤에 대한 열정이 더 컸다고 덧붙였다.

'시지프스'는 네 명의 배우가 인터미션 없이 약 100분을 이끌어가는 난도 높은 작품이다. 내용도 범상치 않다. 희망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무너져 버린 세상 속 버려진 네 명의 배우들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와 엮어 뮤지컬적으로 풀어낸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 샘솟는 희망의 에너지가 다층적인 구조의 스토리를 통해 발현된다. 넘버 또한 감정이 확 몰입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리헤이는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땐 매우 어려웠다. 대본을 처음 받고 '이게 무슨 내용이지?' 싶었다. 접근을 잘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연출님을 비롯해 배우들로부터 대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하나씩 모으다 보니 내 인생이랑 크게 다를 게 없는 작품이라고 느끼게 됐다. 폐허가 된 세상, 그 안에서 으쌰으쌰 하며 돌을 굴리는 네 명의 배우들.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돌을 굴리다가 떨어질 때도 있는 거고, 폐허가 된 세상이라는 것도 우리에겐 코로나19라는 시기가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빗대어 보면서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훨씬 더 올라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연습 때도 대본을 많이 봤는데, 지금은 더 많이 보고 있다. 특히 연습할 때는 내 대사에만 신경을 썼는데, 상대의 대사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전체 리듬에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극에 이입하며 스스로 위로받은 대사가 있냐는 질문에는 '시지프스'의 명대사로 꼽히는 "더럽게 힘든데, 더럽게 행복하다"를 꼽았다. 리헤이는 "크게 와닿는 대사다. 연습할 때는 더럽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또 더럽게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첫 공연 때는 동료 댄서들도 관객석에서 응원을 보냈다고. 리헤이는 "첫 공연 때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노제·효진(효진초이)이·아이키 언니가 왔다. 셋 다 서프라이즈로 예매를 한 거라 각자 따로 앉았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아이키는 리헤이보다 먼저 '프리다'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뮤지컬 선배다. 리헤이는 "언니랑 연락을 많이 하는 편인데, 작품 얘기보다는 내 멘탈 케어를 해줬다. '잘하고 있다. 진득한 성격이니 어떻게든 된다'고 얘기해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뮤지컬 배우' 리헤이의 데뷔는 사실상 합격점을 받은 상태다. 관객들로부터 움직임은 물론이고, 노래·연기까지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없이 흘린 땀방울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리헤이는 "댄서들은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100% 써야 한다. 5분 동안 러닝머신을 제일 빠르게 뛴 느낌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중간 속도로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처음엔 호흡을 어디서 멈추고 쉬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초반 넘버 4, 5개가 끝나면 아직 할 게 많이 남았는데 죽겠더라. 런스루(실제 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하는 연습) 때부터 시간 계산을 다시 했다"고 전했다.
연기 연습과 관련해서는 "다른 배우분들이 옆에서 계속 같이 입을 맞춰줬다"고 했다. 리헤이가 연기하는 포엣은 '이방인' 속 뫼르소의 어머니, 그리고 남성인 레몽까지 소화한다. 리헤이는 "엄마 역할이 제일 어려웠다"면서 "엄마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우리 집 강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강아지의 엄마이지 않나. 그렇게라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퇴근길 문화(공연이 끝나고 배우가 퇴근길에 팬들과 만나 인사하는 것)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할 정도로 '병아리 신입'이지만, '시지프스'를 시작으로 뮤지컬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힌 리헤이였다.
"'시지프스'를 통해 댄서로서도 감수성이 풍부해졌어요. 저 자신에게 좋은 시너지가 났어요. 전 큰 목표를 세우지 않고, 눈앞에 있는 목표를 자주자주 세우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성장 속도가 느릴 수 있지만, 조금씩 차근차근 올라왔고 이런 방법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뮤지컬 장르에서도 이런 식으로 발전시켜나가고 싶어요."
'시지프스'는 오는 3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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