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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선…다시(出汁)를 마시러 카페에 갑니다 [김현주의 재팬코드]

입력 2026-01-17 07:00  


겨울철엔 뜨거운 음료가 더 간절해진다. 한국에서는 손난로처럼 들고 마시는 커피가 가장 익숙하지만, 일본에서는 최근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카페에서 컵에 담긴 ‘다시(出汁)’를 주문해 한 모금씩 음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요리에만 사용된다는 전통 국물인 다시가 틀을 깨고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도쿄를 중심으로 번진 이 ‘다시 카페’ 문화는 힙스터적 트렌드를 넘어 전통 요리를 새롭게 소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요리에 쓰이던 국물이 음료로 인식되면서 젊은 세대에게 일상의 작은 위로처럼 소비되는 모습은 일본에서 낯설지 않다. 전통은 그대로지만 접근 방식은 달라졌다. 다시는 ‘요리의 기초’에서 ‘마시는 음료’로 조용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다시, 오랜 시간 쌓인 맛의 구조
일본 요리의 기반은 언제나 다시였다. 나라 시대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일본의 다시 문화는 헤이안 시대, 에도 시대를 지나면서 가쓰오부시 기술과 함께 정교하게 발전했다.

한국의 육수가 ‘시간을 끓여내는 방식’이라면, 일본의 다시는 ‘시간을 우려내는 방식’이다. 다시마의 글루타민산, 가쓰오부시의 이노신산이 만나 감칠맛의 정점인 ‘우마미(旨味)’를 만든다.

특히 일본의 고급 식당에서는 '1번 다시'와 '2번 다시'를 엄격하게 구분해 사용하는 등 요리마다 구분해서 쓰곤 한다. 1번 다시는 끓기 직전 다시마를 건져내고 가쓰오부시를 짧게 우려 맑고 섬세한 감칠맛만을 뽑아낸다. 이는 맑은 국물 요리나 고급 요리에 사용된다.

2번 다시는 이미 사용한 재료를 다시 우려내거나 더 오래 끓여 깊고 강한 맛을 내는 것으로, 조림이나 찌개류에 활용한다. 같은 재료로도 추출 방법에 따라 용도를 달리하는 이 문화는 맛의 층위를 섬세하게 나누는 일본 특유의 태도를 보여준다.

다시가 국물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 데에는 과학적 배경도 있다. 글루타민산은 뇌에서 안정감을 유도하고, 이노신산은 포만감과 집중력을 돕는다. 즉, 다시는 맛뿐 아니라 ‘마시는 순간 몸이 진정되는 느낌’을 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요소는 현대 소비자들이 커피 대신 ‘몸이 편해지는 따뜻한 음료’를 찾는 흐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전통이 지금의 일본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다시 카페다. 전통의 맛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 커피처럼 들고 다니는 음료로 재탄생시켰다.
전통의 재해석, 일본의 ‘다시 카페’들이 만들어낸 새 일상

사실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온천 호텔이나 노포식당에서 ‘따뜻한 다시 캔 음료’를 제공하거나 자판기에서 판매하곤 했다. 기계 안에서 데워진 짭조름한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기대와 다른 맛에 놀라면서도 묘하게 중독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다시를 ‘음료처럼 마시는 문화’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했다. 지금의 다시 카페로 발전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

이 변화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곳이 도쿄 니혼바시의 ‘니혼바시 다시바’다. 300년 전통의 가쓰오부시 전문점 닌벤(にんべん)이 만든 이 공간은 다시를 테이크아웃 음료로 마실 수 있게 한 원조격이다. "일식일반(一汁一飯, 한 그릇의 국과 한 그릇의 밥)"을 콘셉트로, 기본 가쓰오 다시부터 토마토·크림·미소 등 현대적 변주를 더한 메뉴까지 준비돼 있다. 점심시간이면 주변 직장인들이 커피 대신 뜨끈한 다시 한 잔을 들고 이동하는 장면이 매우 자연스럽다. 2024년 기준 누적 판매 107만 잔 돌파라는 기록은 이 문화가 단순 유행이 아님을 보여준다.



니가타현의 ‘온 더 우마미(ON THE UMAMI)’는 다시를 ‘커피처럼 내리는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바리스타처럼 다시 드립을 내리는 실험적 방식과 여덟 가지 육수 베이스는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들였다. 니가타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농장·공장·카페·체험관이 결합한 형태로, 전통 식자재가 어떻게 생활 속에서 소비될 수 있는지를 사례로 보여준다. 특히 직접 재료들을 재배하는 과정을 고객들에게 전달하며 '재료를 이해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도쿄 미시쿠의 '미야비 유이노쥬(雅結?, Miyabi Yuinojyu)'는 가장 담백한 형태를 지향한다. 2016년 문을 연 이곳은 '마시는 다시'의 원조 격으로, 점주가 한 요릿집에서 마신 다시에 감동해 '커피나 홍차처럼 다시를 마실 수 있다면'이라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소금조차 넣지 않은 순수한 천연 다시 만을 제공하며 홋카이도산 다시마, 가고시마산 가쓰오부시, 규슈의 원목재배 표고버섯 등 엄선된 지역 식자재를 드립 방식으로 내려 제공한다. 계절 한정 메뉴로 벚꽃 다시까지 선보이는 이곳은 화학적 요소를 최소화한 온전한 맛으로 건강을 중시하는 30~40대 직장인들에게 특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 공간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흐름은 명확하다. 전통은 지키되, 소비 방식은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것. 따뜻한 국물 한 잔을 마시는 행위가 위로되는 시대에, 다시는 자연스럽게 전통을 현대화시킨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다시로 보는 사회 변화와 감각의 재발견
일본의 다시 카페 확산에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 1인 가구 증가, 바쁜 일상에서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려는 욕구, 느린 먹거리 열풍, 그리고 '가벼운 건강함'을 찾는 소비자 흐름이 맞물렸다. 커피나 에너지드링크가 즉각적인 자극을 준다면, 다시는 몸을 편안하게 데워주고 과하지 않은 안정감을 준다.

전통적인 조리 방식이 ‘슬로우 푸드’에서 ‘슬로우 드링크’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조리법인 다시가 카페와 같은 형태로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분명하다. 다시를 우려내는 조리법 자체가 드립 방식으로 옮겨가는 데 무리가 없었고, 전통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다시를 음료로 마시는 경험을 통해 일본 요리의 핵심인 우마미의 매력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전달했다.

또 일본 젊은 세대들은 오래된 문화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속도에 맞게 재해석한다. 다시바의 미니멀한 인테리어, 드립 방식, 테이크아웃 컵 디자인은 전통 요리를 ‘새로운 감각의 라이프스타일’로 수평 이동시키는 시도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카페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에 가깝다.

이 흐름을 보며 자연스럽게 한국의 육수 문화도 떠오른다. 한국에는 이미 멸치·사골·해산물·북엇국 등 다양한 육수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이 풍부한 전통은 대부분 '오래 끓여 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고정돼 있다. 육수는 재료의 다양성과 깊이 면에서 일본 못지않은 강점을 가진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면 충분히 새로운 식문화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컵냉면이나 컵물회처럼 전통 음식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이미 확산하고 있다. 밀키트나 간편식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역시 어릴 때부터 먹어온 집밥, 가정식이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골육수나 멸치육수도 언젠가 한 잔의 따뜻한 음료로 소비될 수 있지 않을까.

출근길에 따뜻한 멸치육수 한 잔, 혹은 저녁에 사골 베이스의 부드러운 한 잔을 마시는 풍경 말이다. 한국에서도 육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육수 카페'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게다가 캠핑 문화가 발전하면서 간편한 티백 타입의 육수도 시중에 나와 있으니 말이다.

전통을 해체하거나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하는 법을 연구하는 것. 일본의 다시 카페는 그 변화의 훌륭한 예시다. 겨울바람이 매서워지는 이 계절, 따뜻한 국물의 힘이 한층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시 카페에서 손바닥을 데우는 테이크아웃 컵처럼, 전통은 그렇게 현대의 속도에 조용히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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