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이 끝났지만, 책은 계속 팔리고 있었습니다."
국내 아동도서 출판사 '케이블러썸' 대표 이모씨(53)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자사 도서가 무단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다. 4년 전 저작권 계약이 종료된 아동 영어 전집 '잼잼 잉글리시'가 중국 현지에서 매달 수천 세트씩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중국 출판사가 해당 도서를 러시아, 동남아, 아랍권 등 제3국으로도 수출하면서 자사의 해외 판로가 사실상 차단됐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저작권 계약이 종료된 뒤에도 한국 아동도서가 중국 전자상거래와 숏폼 플랫폼을 타고 무단 유통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계약 과정에서 제공된 원본 파일이 회수되지 않는 구조적 허점을 노려, 중국계 출판·유통업체들이 불법 인쇄와 판매를 이어가는 것이다.
특히 아동도서가 비교적 쉽게 복제할 수 있고 시장 규모가 큰 콘텐츠로 주목받으면서 국내 출판사의 저작권 보호가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케이블러썸은 2016~2018년, 2019~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출판사와 도서출판 계약을 체결했다. 저작권자가 원고(PDF)를 제공하면 현지 출판사가 인쇄·판매를 맡고, 계약 기간 동안 인쇄 수량과 판매 내역을 보고하는 구조다. 그러나 2022년 중국 출판사가 판매 부진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한국 측은 이를 받아들여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문제는 계약 종료 이후였다. 중국 내 판매가 지속되며 일부 플랫폼에서는 출판사명이 바뀐 채 유통되기도 했다.

한국 아동도서 출판업을 노리고 '해적판'을 만들어 큰돈을 버는 방식이 중국 출판사의 관행으로 굳어진 양상이다. 출판사 '푸른 하늘'이 발간한 아동 영어 전집 '잉글리시 애플' 역시 2017년 동일한 중국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체결하고 5년 만에 종료됐지만, 이후에도 계속 현지에서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출판사들은 피해 사실을 현지 시장관리국에 제소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실질적인 구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피해 규모는 정확한 산정조차 어렵다. 판매자 계정이 수시로 바뀌거나 상품명이 변형되는 등 숏폼을 통해 판매 링크가 갈아끼워지는 구조 탓에 인쇄 수량과 유통 경로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케이블러썸이 추산한 피해액은 약 300억원에 달한다.
저작권 침해가 발생해도 중국 현지에서 직접 고소나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번역·법률 비용과 장기간 소요되는 절차가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플랫폼을 통한 삭제 요청이 이뤄지더라도 재업로드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 근본적 해결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경환 저작권법 전문 변호사는 “저작권은 베른 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보호되지만, 해외에서 침해가 발생한 경우 해당 국가에서 직접 고소나 소송을 제기해야 해 현실적인 부담이 크다”며 “개별 업체가 각각 대응하기보다는 정부와 유관 협회 등이 협업해 공동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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