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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계속되고, 청구서는 세계 곳곳에…투자 지도는 바뀌었다

입력 2026-01-19 11:44   수정 2026-01-19 11:45




1945년 4월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며 세계는 ‘전쟁 없는 지구’를 꿈꿨다. 그러나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더 이상 먼 곳의 뉴스가 아니다. 전선은 멀지만 그 영향은 가격과 비용으로 시장에 스며든다. 우크라이나 전면전의 장기화와 가자지구·예멘·수단의 무력 충돌은 글로벌 경제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세계경제의 투자 지형마저 흔들고 있다.

◆출구 없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군사적 충돌이다.

1월 11일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 이후 정확히 1418일째를 맞았다고 전했다. 이 숫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현 러시아) 간 전쟁이 시작부터 종전까지 이어진 기간인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독일·소련 전쟁 기간을 넘어선 셈이다.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초기 관측과 달리 장기전으로 굳어졌고 개전 4년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침공 명분으로 내세웠다. 러시아군은 민간인이 아닌 군사 시설만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민간인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숨진 민간인은 약 2500명으로 2022년 이후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유엔은 지난해까지 우크라이나 민간인 누적 사망자를 약 1만3500명으로 집계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현재까지 최소 1만6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감시단이 조사하지 못한 러시아 점령지 등도 있어 실제 사망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측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러시아 영토 내에서 민간인 253명이 사망하고 187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냉전 이후 유지돼 온 ‘유럽 내 대규모 전면전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를 무너뜨렸다. 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안보 질서의 충돌,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둘러싼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나토는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는 군사동맹이다.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가 공격을 받을 경우 동맹 전체가 공동 대응하는 집단방위 체제를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 이후 동유럽으로 나토가 확장돼 온 흐름을 자국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해 왔으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편입할 경우 서방 군사력이 러시아 국경 바로 앞까지 들어오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서방 편입을 국가 전략으로 삼아왔다. 2019년 헌법을 개정해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국가의 전략적 목표로 명시하며 나토 회원국 가입을 추진해 왔다.

공교롭게도 전쟁이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전망은 오히려 불투명해졌다. 중재에 나선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밝혀 왔다.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명시적인 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는 대신 동맹이 공동으로 방어에 나서는 이른바 ‘나토식 집단 방위’에 대한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에너지부터 달러까지 흔들

전쟁의 충격은 정치 영역에 그치지 않았다. 경제적 파장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졌다.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에너지 시장이다. 러시아는 전쟁 이전까지 유럽의 핵심 천연가스 공급국이었다. 전쟁으로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급격히 줄었고 이는 유럽 전역의 전기·가스 요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산업 현장에서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다. 화학·철강·자동차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생산 차질과 감산이 잇따랐고 일부 기업은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독일 전체 실업자 수는 300만 명에 육박하며 10년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에너지 위기는 단순한 물가 문제를 넘어 유럽 산업 경쟁력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했다.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신뢰도 흔들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로 달러 자산을 동결당한 이후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주요 신흥국을 중심으로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가 정치·외교적 갈등이 불거질 경우 언제든 자산이 묶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이다. 이들은 미 국채 보유를 줄이는 대신 금 매입을 늘렸고 금값 상승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작년 금값은 최고치를 거듭 경신했다.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고 있는 미국은 위기감을 느끼고 달러 중심 금융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그중 하나로 부상한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1코인을 1달러 등 실물 자산에 연동해 가치를 유지하는 가상자산이다. 테더(USDT)와 서클(USDC) 등이 발행하고, 발행사는 코인 가치 유지를 위한 담보 자산으로 대규모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발행사들이 미 국채 시장의 큰손이 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지난해 글로벌 거래액이 33조 달러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 시장은 2030년 56조6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의 사용 범위를 디지털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전략적 계산을 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역설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달러 신뢰에 균열이 생겼지만 그 충격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달러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이 전쟁을 계기로 무기 수출에서는 오히려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특별군사작전’을 계기로 역대 최대 규모의 무기 수출 계약(700억 달러 수준)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이전 최대 기록이었던 550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중동 긴장 고조, 유가와 해상 물류도 술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하면서 본격화했다. 하마스는 대규모 로켓 공격과 함께 여러 지역에서 무장 충돌을 일으켰고 이스라엘은 이를 계기로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피해 규모는 막대했다.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7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역시 전쟁의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쟁 장기화로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했고 S&P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스라엘 장기 국채의 신용등급을 한두 단계식 낮췄다. 관광산업도 직격탄을 맞으며 민생 경제에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 10월 10일 휴전을 발효했지만 이후에도 공습과 지상 충돌이 이어지며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중동 전반의 지정학적 긴장이 급격히 높아졌다. 가자전쟁 이후 예멘의 후티 반군은 홍해와 아덴만 일대에서 이스라엘 연계 선박을 공격하며 홍해 항로를 위협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무장 세력으로 2014년 당시 정부를 몰아내고 수도 사나를 장악하면서 예멘 내전을 촉발했고 현재도 두 세력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은 하마스, 후티 반군을 비롯해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 세력을 지원하고 있는데 최근 고물가와 경제난으로 이란 내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2주째 이어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 확산에 국제 유가도 즉각 반응했다. 1월 9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장 대비 2.35% 급등한 배럴당 59.12달러에 마감했다.

반면 방산 주가는 전쟁의 장기화가 구조적 수요로 이어지면서 단기 테마를 넘어 장기 투자 대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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