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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뽑기방의 성행, 청년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EDITOR's LETTER]

입력 2026-01-19 08:46   수정 2026-01-19 08:47

[EDITOR's LETTER]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어느 겨울밤. 주황색 가로등이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발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늦은 퇴근길, 집 앞 골목 귀퉁이에 있는 작은 술집 앞을 지나갔습니다. 가게 안에 손님은 중년의 남성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술집 주인은 TV를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손님은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다 눈 오는 창밖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남성에게 왠지 모를 슬픔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그의 사연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삶의 무게 같은 게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외환위기의 잔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산책을 위해 밤늦게 집을 나섰습니다. 한 상가 건물에 또 인형뽑기방이 생겼더군요. 작년부터 눈 돌리면 하나씩 생기는 게 인형뽑기방이란 생각을 하며 가게 앞을 지나쳤습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길옆 인형뽑기방을 쳐다보니 한 젊은이가 검정 롱패딩에 큰 가방을 메고 인형을 뽑고 있었습니다. 겨울밤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듯합니다. 문득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1990년대 말 술집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 젊은이가 인형을 잘 뽑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형뽑기방의 유행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경기 변두리 길거리 한 블록에는 두세 개씩 있는 곳도 있습니다. 불황의 징표입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사업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게 되자 비용이 적게 드는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입니다. 별도의 인테리어도 필요없습니다.

자영업의 몰락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무인 인형뽑기방은 상가의 가치를 떨어뜨릴 확률이 높습니다. 상당수 인형뽑기방은 임대로 나와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1, 2년 새 전국에 수천 개가 늘어 포화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인형뽑기방이 빠져나간 자리는 어떤 자영업이 대체할까. 더 좋은 업종이 들어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형뽑기방은 청년들의 문제와 오버랩됩니다. 취업준비나 학업, 가사 등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은 70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30대에서도 31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청년 실업률은 6%를 넘었고 청년 고용률은 20개월 연속 하락했습니다.

인형뽑기방을 이용하는 상당수가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에게 인형뽑기는 어쩌면 현재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이런 청년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듯 주식시장은 활황입니다. 주가 5000이 코앞에 와 있습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전통적 제조업은 물론 방산, 로봇, 바이오 등 새로운 산업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주식이 모두 급등했습니다. 주가가 이렇게 올랐지만 느낌은 과거 주식 활황기와는 다릅니다. 주가가 오르면 ‘부의 효과’로 소비가 확대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코로나19 직후가 그랬습니다. 주식, 부동산, 코인 등이 상승하며 사회는 들썩거렸습니다. 골프와 명품이 키워드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과 달리 사회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습니다. 실물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청년 취업의 문이 더더욱 좁아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K자형 회복이란 말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합니다. 잘되는 곳은 더 잘되고 좋지 않은 곳은 더 안 좋은 양극화라고도 하고, 두 개의 경제라고도 합니다.
양극화가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말은 많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었습니다.

현 정부도 K자 하단에 해당하는 자영업, 청년, 지방을 중심에 두고 회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쉬고 있다고 답한 청년 중 10만 명을 취업자로 전환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들을 취업시키는 것은 결국 기업들의 몫입니다.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하고 고용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말은 이제 식상하고 현실성도 없어 보입니다. 새로운 사고와 발상이 필요한 때입니다. 또 기업들이 고용을 확대하지 못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청취하는 창구도 꼭 필요합니다.

아울러 벤치마킹도 필요합니다. 직업 실습과 교육을 병행하는 독일의 듀얼시스템, 청년이 실업 상태가 되면 국가가 수개월 내에 신속히 개입하는 오스트리아의 청년보장제, 연령별 최저임금을 차등화해 청년고용을 확대한 네덜란드의 사례 등은 참고할 만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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