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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3나노의 비밀…보이지 않는 'EUV 매직' 진짜 설계자 [강경주의 테크X]

입력 2026-01-16 07:00   수정 2026-01-16 07:14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High-NA EUV'는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에 필수로 쓰인다. 국내 반도체 업계와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ASML이 High-NA EUV를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네덜란드 현지에선 이 장비를 ASML가 만들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하이테크 클러스터인 '브레인포트'의 기업, 대학, 연구소로 구성된 공급망 생태계가 함께 만든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ASML 생태계의 핵심 기업인 뎀콘의 에릭 슬라크호르스트 하이테크 부문 부사장은 최근 네덜란드 엔스헤데 본사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뎀콘은 제품 회사가 아니라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트랙트 R&D 기업”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컨트랙트 R&D는 기업이 내부에 없는 기술과 장비, 전문 인력을 외부에 계약 형태로 위탁해 R&D를 수행하는 방식을 뜻한다. 컨트랙트 R&D 기업은 단순 용역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 정의, 시스템 설계, 시제품 제작, 성능 검증, 양산 가능성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책임진다. ASML이 이 방식을 쓰는 이유는 내부 역량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개발 속도와 복잡도, 리스크를 외부 조직과 분산하고 생태계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슬라크호르스트 부사장은 "뎀콘은 ASML에 특정 부품이나 장치를 납품하기보다 EUV 노광장비를 구성하는 핵심 서브시스템과 개발·검증 장비를 프로젝트 단위로 설계·제작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노광 공정의 정밀도를 좌우하는 스테이지 관련 메카트로닉스 서브시스템, 초정밀 위치 제어·진동 억제·열 안정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시스템 모듈, EUV 장비가 설계 사양대로 동작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퀄리피케이션(성능 검증) 툴이 뎀콘의 주요 영역이다.

이들 장비와 서브시스템은 물리·기계·전자·소프트웨어(SW)가 복합적으로 얽힌 하이테크 시스템으로, ASML 내부 개발만으로는 일정과 리스크 관리가 어려운 구간을 뎀콘이 맡아 초기 R&D 단계부터 양산 직전 검증 단계까지 책임진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컨트랙트 R&D 기반의 서브시스템 개발 역량이 ASML의 EUV 초격차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핵심 공급망으로 평가하고 있다. 회사 이름에도 정체성이 담겨 있다. 뎀콘의 영문명인 'Demcon'은 'DEvelopment & Manufacturing of CONcepts'의 약자로, 개념 단계의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 가능한 기술과 시스템으로 개발·제조하는 엔지니어링 회사라는 뜻을 가졌다.

뎀콘의 경쟁력은 R&D 연구소와 시제품 제작 조직인 프로토샵이 물리적으로 50m 이내에 위치한 것이 핵심이다. 설계가 나오면 곧바로 실제 부품을 만들어 검증하고 제조 가능성과 양산성을 동시에 점검한다. 시간은 단축되고 소통 과정의 오류는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슬라크호르스트 부사장은 "개발 단계부터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 대량 생산이 가능한가’를 설계 엔지니어들과 제작 엔지니어들이 함께 검증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밝혔다. 이 구조는 하이테크 장비 산업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리스크인 '설계와 제조 간 단절'을 원천적으로 제거했다.

ASML과 프로젝트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ASML이 과제를 던지면 뎀콘은 이를 완전히 독립적인 책임 하에 수행한다. 슬라크호르스트 부사장은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는 물리학, 기계공학, 전자, 메카트로닉스, 멀티피직스(다중 물리 시뮬레이션) 전문가들이 동시에 투입된다"며 "ASML 내부에도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있지만 일정·인력·양산 압박 때문에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공백을 뎀콘 같은 컨트랙트 R&D 기업이 메운다"고 설명했다.

뎀콘의 또 다른 축은 네덜란드 명문 공대와의 연결이다. 슬라크호르스트 부사장은 "델프트 공대, 에인트호번 공대, 트벤테 공대와의 협력은 단순한 논문 교류가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의 실전 협업"이라며 "많은 공대생들이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뎀콘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스핀오프된 스타트업들과도 기술과 인력 교류를 통해 협력하고 때로는 자본까지 투입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 이는 네덜란드가 추구하는 정부, 대학, 기업 3축 협력 체계인 '트리플 헬릭스' 모델이 작동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네덜란드의 개방형 공급망 문화는 제조 강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방식과 정반대다. 슬라크호르스트 부사장은 "독일 업체들은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R&D 단계부터 기업과 대학이 함께 일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라며 "이같은 구조가 ASML이라는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낸 토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력 측면에서도 네덜란드의 경쟁력은 증명되고 있다. 델프트, 아인트호번, 엔스헤데 등지에는 물리학과 기계공학 기반의 젊은 인재 풀이 풍부하다. 이들은 뎀콘과 ASML, 그리고 BESI, ASMPT 같은 글로벌 장비 기업으로 흘러 들어간다. 슬라크호르스트 부사장은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엔지니어들이 계속 지원하기 때문에 인력 부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엔스헤데=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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