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는 ‘영적인 섬’으로 여겨진다. 4세기부터 뿌리내린 힌두교 유산과 열대 숲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신비로움 덕분이다. ‘발리의 심장’으로 불리는 우붓은 특유의 분위기로 전 세계 히피의 성지가 됐다. 명상하고 요가를 하며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나오는 곳.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 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우붓에 파인다이닝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덴파사르 국제공항에서 약 2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정글, 그 속의 파인다이닝 ‘아페리티프’로 가봤다. 이곳은 풀빌라 리조트 바이스로이 발리에 속한 레스토랑이다. 숙소는 객실이 40개뿐인 프라이빗한 규모로 고요하지만,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로 매일 저녁 북적인다.우붓 지역에 럭셔리한 리조트는 적지 않지만 파인다이닝급 레스토랑은 아페리티프뿐이다. 이곳을 이끄는 이는 벨기에 출신의 닉 판데르비컨 셰프다. ‘마스터셰프 인도네시아’ 편 심사를 맡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던 이다. 발리를 찾는 수준 높은 미식가에게 리조트 업장 이상의 음식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포부가 그를 우붓에 정착하게 만들었다.
아페리티프는 식사 전 간단한 음료와 핑거푸드를 즐기는 유럽 문화에서 이름을 땄다. 이름값을 하듯 식전주 의식에 힘을 줬다. 모든 손님은 레스토랑으로 향하기 전 ‘핀스트라이프 바’로 안내받는다. 짙은 녹색 가죽 소파, 마호가니 나무가 호화롭다는 인상을 주는 공간이다. 푹신한 소파와 재즈 음악에 긴장이 풀릴 무렵 네그로니 한 잔이 나온다. 현지에서 즐겨 먹는 과일 타마릴로가 들어가 새콤한 칵테일로 입맛을 깨우면 비로소 식사 준비가 끝난다.


웨이터를 따라 본격적인 다이닝이 펼쳐질 홀로 들어선다. 거대한 홀은 1920년대 아르데코 스타일의 흑백 타일과 샹들리에로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파티장을 연상시킨다. 두 공간을 오가며 연극적 분위기에 젖어든 손님은 어느새 우붓 정글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잊는다.
판데르비컨 셰프가 지향하는 것은 ‘경계 없는 음식’이다. 7코스 동안에는 프랑스식, 인도네시아식 등 국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디시가 펼쳐진다. 현지 재료를 프렌치 스타일로 조리하거나 일본식 감칠맛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그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인도네시아 향신료다. 식사 중 테이블에는 갈랑갈, 강황, 육두구 등 각기 다른 허브로 채워진 16칸 박스가 등장한다. 손님들이 디시와 소스에 녹여진 이국적인 향신료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주방에서 나온 셰프가 “이 허브들이 맛의 핵심”이라며 하나하나의 맛을 설명한다.“‘케미리’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나는데, 너티하고 크리미한 맛을 냅니다. 우리는 소스 맛을 부드럽게 만들거나 질감을 꾸덕하게 할 때 사용합니다.”
16가지 허브는 삼발 소스를 만드는 데도 활용한다. 삼발은 한국의 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발효 양념이다. 매운 고추에 마늘, 양파 등을 넣어 다양하게 변주하는데 300개가 넘는 삼발 소스가 있다. 아페리티프에서는 서양 음식 재료에 삼발을 과감하게 접목한다. 시그니처 메뉴인 와규 카르파치오에는 청고추를 넣어 풋풋한 맛이 나는 ‘삼발 히자우’를 더한다. 캐비아와 랍스타에는 상큼한 풍미의 ‘삼발 마따’ 소스를 사용한다.테이블에 오르는 허브는 레스토랑에서 직접 재배한다. 리조트에 조성한 농장에서 매일 아침 수확해 ‘팜 투 테이블’을 실천한다. 인도네시아 매운 고추인 ‘차베’를 비롯해 레몬칠리, 하바네로 등 고추 종류만 해도 다채롭다.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아 야생 원숭이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이는 음식에 땅의 기운인 ‘테루아’를 더하는 방법이다.
코스 내내 조개 관자 수프, 뵈르 블랑 파스타, 웰링턴 스테이크 등 서양 메뉴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식사 후 인도네시아의 맛을 경험했다고 느끼게 된다. 디시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인도네시아 향신료 덕분이다. 발리를 미각으로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우붓=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