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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재발과 단절 사이

입력 2026-01-15 17:23   수정 2026-01-16 00:02

“치료 전에 정자 보관을 해야 하나요?” 외래 진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술은 잘 마무리된 상태였고, 이제 재발 방지를 위한 항암제 치료를 앞두고 있었다. 올해 서른다섯,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취직 5년 차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결혼한 지는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일과 가정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즈음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질문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오래 망설인 흔적이 묻어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조용히 그를 지켜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에 사용할 항암제는 생식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아, 굳이 정자를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고민도, 당장 다시 시작될 일상에 대한 걱정도 함께 안고 있는 듯했다. 어느 하나도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항암치료에 대해 설명하며 덧붙였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손발 저림 같은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젊은 환자일수록 재발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에, 선뜻 치료 강도를 낮추기는 어려웠다.

그는 평일에 진료를 받고, 항암제는 주말에 맞았다. 그리고 월요일이면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손과 발이 저리기 시작했고, 키보드를 오래 두드리는 일이 조금씩 힘들어졌다고 했다. 항암제 용량을 줄이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견뎌 보겠다”고 말했다. 진료실을 나서며 아내는 “괜찮겠어?”라고 물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짧은 반응 속에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일에 대한 책임을 쉽게 내려놓지 않으려는 의지도 엿보였다.

어느 날, 그는 진단서를 부탁했다. 회사에 제출할 용도라며, ‘근무에 지장이 없다’는 문구로 써달라고 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병이 있어도 일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직장에서 안정된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중년 환자들은 ‘몇 개월간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원했다. 하지만 서른다섯, 그의 요청은 달랐다.

최근 젊은 연령층의 암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장암, 유방암, 위암이 대표적이다. 운동 부족, 비만, 음주 같은 생활 습관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그 원인에 대한 연구는 더 필요하다. 이 시기의 암은 신체보다 먼저 삶의 흐름을 흔든다. 학업과 취업, 경력의 궤도가 한순간에 어긋나고, 치료로 인한 공백은 곧 생활의 단절로 이어진다. 결혼과 출산, 가정을 꾸리는 계획도 미뤄지거나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속도가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따라잡기 어렵다. 그래서 젊은 환자들은 치료와 회복보다 ‘뒤처지는 것’을 걱정한다.

그의 항암치료는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그사이에도 일과 삶은 결코 멈춰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진단서를 써주었다. “현재 근무에 큰 지장 없음.” 그 한 줄이 치료의 결과이자 직장이 요구하는 답변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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