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거물 기업인, 컨설팅기업 벨스트리트파트너스 회장, 두 권의 산문집을 펴낸 작가. 박용만 재단법인 ‘같이걷는길’ 이사장(사진)을 부르는 수많은 호칭에 ‘사진작가’가 더해졌다. 16일 서울 남창동의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그의 첫 개인전 ‘휴먼 모먼트(Human Moment)’가 막을 올리면서다.
박 이사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카메라를 잡은 이래 지난 50여 년간 수없이 셔터를 눌러왔다. 한때 사진기자를 꿈꾼 적도 있다. 하지만 개인전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전시장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사진은 열심히 찍었지만 스스로 확신이 없어 전시를 미뤄왔다”며 “그러다 이 시점에서 한 번쯤 평가를 받고, 이를 계기로 새롭게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난 50여 년간 기록해온 사진 중 80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모든 사진에는 인물이나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숲을 찍은 사진조차 인간이 줄을 맞춰 심은 조림지(造林地)를 선택했다. 전시 제목을 ‘인간의 순간’(휴먼 모먼트)으로 정한 이유다. 박 이사장은 “옛날부터 인간의 흔적이 있는 것들에만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1층 전시장에는 기업가와 사진가의 경계에 선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걸렸다. 노르웨이 출장 중 마주한 피오르드 풍경, 개방 초기 중국에서 만난 홍위병 출신 관리들의 경직된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2~3층에서는 1980년대 초반 스위스 레만호수 옆에 앉아 있는 아내의 모습, 일본 여행 중 찍은 두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 등 개인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애정 표현을 하는 연인의 다정한 모습과 이를 질투하는 여성의 시선, 눈밭에서 뛰어다니는 강아지 등 유쾌한 장면도 만날 수 있다. 박 이사장은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사람 사이의 다정함과 평화로운 공존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4층 옥상층에서는 노숙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담은 흑백사진들과 함께 두 점의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다. 풍요로운 도심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개발을 앞둔 낡은 골목집 사진이 대표적이다. 박 이사장은 “오늘날 소외계층과 양극화 문제를 사진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작품 제목과 시기, 장소가 일절 표기돼 있지 않다. 관람객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으려는 의도다. 이번 전시가 기업 경영이나 정치와 무관하다는 점을 박 이사장이 거듭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정치권에서 제발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박 이사장은 사진 200여 점을 수록한 첫 사진집 <휴먼 모먼트>도 냈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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