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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시정명령이 계약 해제 '만능열쇠' 돼선 안 돼

입력 2026-01-15 17:16   수정 2026-01-16 00:11

2003년 발생한 ‘굿모닝시티 사태’는 전국을 뒤흔든 대규모 분양 사기 사건이다. 시행사 대표가 서울 동대문에 쇼핑몰을 짓겠다며 3000여 명으로부터 약 3700억원의 분양 대금을 가로챘다. 점포 마련을 꿈꾸던 서민 투자자가 전 재산을 잃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이듬해 제정된 건축물분양법은 이들 피해자의 눈물 위에 세워진 법안이다. ‘분양 신고제’ 등 계약자를 위한 각종 안전장치가 이때 만들어졌다. 최근 대법원이 계약 해제 근거로 인정한 ‘시정명령’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지난달 하순 대구의 한 오피스텔 계약자가 시행사 등을 상대로 낸 ‘분양대금 반환 등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 사업장은 분양 광고에 ‘지구단위계획 수립 여부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구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1심과 2심 법원은 “내용이 경미해 계약 목적 달성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다”며 계약 해제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위반 사항의 경중을 따질 것 없이 문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을 뒤집었다.

판결 후폭풍이 커지는 것은 법의 배경과 취지, 시정명령이 행해지는 현실 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시정명령은 허위과장 광고나 설계 변경 누락 등 분양받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중대한 내용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시세가 하락한 곳에서 소송 빌미로 삼으려는 집요한 민원 끝에 내려진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정부 관계자가 파악한 현장 분위기다.

지자체마다 기준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다. ‘교육환경보호구역 설정 여부 미기재’라는 같은 사안을 두고 서울 동대문구는 “시정명령을 요구할 사안이 아니다”고 판단했지만, 경기 평택시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경기 한 오피스텔 현장은 행정청이 “단순 오기에 대한 정정공고 제도가 없다”며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시정명령 제도는 분양받은 사람을 보호해 시장의 불평등한 구조를 바로잡는 데 기여해왔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 사소한 누락이나 오기를 빌미로 투자 손실을 전가하려는 ‘도덕적 해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 한 축에는 일감이 궁한 기획소송 변호사가 자리하고 있다.

시정명령이 계약 해제의 ‘만능열쇠’가 돼서는 안 된다. 위반의 경중과 신의칙을 조화롭게 고려하는 법리적 잣대가 필요하다. 주택법에 근거한 아파트는 중대한 하자 등으로 계약 해제 요건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단순 오기가 무더기 계약 해제 소송, 시행사 파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지는 나비효과가 나타난다면 ‘제2의 굿모닝시티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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