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해상풍력 개발사들이 잇따라 사업 철수를 검토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발전사업허가 신청 단계부터 총사업비의 15%에 해당하는 자기자본 투자확약서(LOC)를 요구하면서, 추가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사실상 소진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해상풍력 발전단가(LCOE)를 낮추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기존 사업들을 좌초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해상풍력 사업자 8곳은 한국풍력산업협회에 “기후에너지환경부 전기위원회의 발전사업 세부 허가기준이 해상풍력 추가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내달 초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거쳐 기후부에 안건을 공식 제출할 예정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내달 6일 관련 주제로 업계 간담회를 열어 현장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개발사들이 문제삼는 것은 재무 요건의 '입증 시기'와 '방식'이다. 해상풍력은 착공까지 7~10년이 걸리는 장기 사업으로, 이 기간 동안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금융 여건이 크게 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 단계에서 산정한 총사업비 자체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금융기관이나 펀드 입장에서는 아직 인허가도 시작되지 않은 발전사업허가 신청 단계에서 산정된 사업비를 기준으로 ‘무조건 투자하겠다’는 확약서를 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인프라 사업은 착공이 임박한 시점에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도록 요구한다"고 했다.
실제로 도시가스사업법 시행규칙은 도시가스사업이 안정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자기자본비율이 공급 개시 시점까지 총사업비의 30%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허가 단계가 아니라 사업 시행 단계에서 재무 요건을 충족하도록 한 것이다.

자금 조달 구조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정부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투자확약서를 요구하면서, 금융투자업계의 재생에너지 투자 참여 자체가 막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착공 직전도 아닌, 사업의 극초기 단계부터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 투자확약서를 요구해 해상풍력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현행 ‘1%?15%’ 재무 요건을 적용하면, 해상풍력 1기가와트(GW) 규모 사업의 경우 발전사업허가를 신청하는 단계에서부터 약 700억원을 자본금으로 현금 납입하고, 추가로 1조원 안팎의 투자금을 반드시 넣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전체 사업비가 수백억원 수준에 그치는 태양광의 경우 같은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재무 요건을 충족하는 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 재생에너지 발전원 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해상풍력 개발사들은 바람이 강한 해역에 풍황계측기(1기당 약 30억원)를 여러 대 설치해 발전 가능성을 검증한 뒤, 경제성이 확인된 해역에 대해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권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한 해역에서 보통 2~4기가와트(GW) 규모의 발전 가능 물량을 확보한다.
이후 해당 해역을 여러 메가와트(MW) 단위 사업으로 나눠 발전사업허가를 신청하지만, 허가 이후에도 환경영향평가와 군 작전성 평가 등 각종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수년씩 지연되면서 실제 공사로 이어지지 못한 채 사업이 정체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자들은 동일 해역 내 남은 GW급 사업을 추가로 추진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려 하지만, 발전사업허가 단계부터 적용되는 재무 요건이 다시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미 1~2GW 규모의 기존 사업에 대해 재무 요건을 맞추느라 추가 투자 여력이 거의 소진된 상태에서, 추가 GW급 사업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일부 기업들은 추가 사업을 접고, 인력 구조조정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에코플랜트는 프랑스 토탈에너지 등과 공동 출자한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 '바다에너지' 청산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업계는 해상풍력특별법 시행으로 사업 환경이 달라졌다고 반박한다. 또 다른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해역을 미리 선정·검토한 ‘계획입지’를 중심으로 보급을 늘리는)해상풍력특별법이 통과된 뒤에는 계측기만 꽂아 해역을 선점하는 방식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해풍법 계획입지 물량 확보를 위해 기존 사업자들의 철수를 사실상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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