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904.66
(63.92
1.32%)
코스닥
968.36
(13.77
1.44%)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더 라이프이스트-공간 이야기] 고위 공직 후보자의 청약 당첨

입력 2026-01-19 17:26   수정 2026-01-19 17:27

도시는 거대한 욕망이 담긴 텍스트다. 그 글을 읽다 보면 가끔 해석이 안 되는 이상한 문장을 마주한다.

최근 고위 공직 후보자의 청약 당첨 소식이 그렇다. 막대한 자산을 가진 사람과 무주택자라는 법적 지위의 만남. 이 기묘한 모순은 수십억 원의 시세 차익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건을 채웠고 절차는 투명했다. 하지만 대중은 분노한다. 이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이나 박탈감이 아니다. 우리가 믿어온 공정이라는 약속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무주택'이라는 이름과 현실의 거리

'집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내 삶을 지탱할 터전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우리 청약 제도는 이 절박함을 헤아려 점수를 주고 우선권을 주며 꾸준히 발전해 왔다. 과거에는 집이 없는 것과 돈이 없는 것이 대체로 일치했기에, 소유 여부만 따져도 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경제 구조가 훨씬 복잡해졌다. 집은 없지만 수백억 원의 현금을 쥐고 최고급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제도는 열심히 다듬어졌지만, 이렇게 자산소유가 따로 노는 틈새까지는 미처 막지 못했다. 세상은 변했는데 기준이 자산의 규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다. 결국 이 틈을 타 자산가가 주거 약자의 자리에 합법적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보가 아니라 자본이 만든 장벽

요즘은 일반 시민들도 청약 제도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 가점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공부한다. 그러니 이 문제는 시민들이 제도를 몰라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현금 동원력의 차이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강남 아파트는 당첨되더라도 당장 수억 원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대출 규제로 묶인 이 높은 진입 장벽 앞에서, 평범한 서민에게 로또 청약은 알고도 가질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반면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가진 이들에게는 다르다. 그들은 고액 전세에 거주하며 무주택 기간을 채우고,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자본을 투입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힘 있는 자들은 제도의 맹점을 파고들 자본이 있었고, 서민들은 그저 바라만 봐야 했기 때문이다.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자격을 갖추고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대중을 더 허탈하게 만든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 그 너머의 태도

이번 논란의 당사자는 국가의 예산과 정책을 설계하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다. 과거 본인이 비판했던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은 더욱 뼈아프다. 물론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직자에게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법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일 뿐이다. 리더십은 법 너머에 있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공공의 가치를 위해 멈출 줄 아는 태도, 우리는 그것을 품격이라 부른다. 제도의 구멍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사업가일지 모르나, 그 구멍을 메워야 하는 사람은 바로 공직자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법을 잘 이용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무거운 책임감이다.

제도는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이번 논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숙제를 남겼다. 우선 시스템을 더 꼼꼼하게 손보는 일이다. 집을 가졌느냐 아니냐를 넘어, 실제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반영해 정말 필요한 사람을 가려내는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제도가 아무리 완벽해도 욕망을 가진 인간의 영리함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 빈틈을 탐욕으로 채우지 않는 절제, 그것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정책은 차가운 숫자로 쓰이지만, 그 끝은 늘 따뜻한 사람의 삶을 향해야 한다. 제도의 빈틈과 힘 있는 자의 욕망이 만난 이번 사례는 우리에게 서늘한 패배감을 안긴다. 집은 사는(Buying) 이기 이전에 사는(Living) 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거대한 욕망 앞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명재환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