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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보다 여정이 더 중요한 이유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입력 2026-01-16 00:35  

이타카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네가 이타카를 향해 길을 떠날 때,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모험과 발견으로 가득하기를.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
네 생각이 고결하고
숭고한 감동이
네 정신과 육체에 깃들면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네가 맞이할 여름날 아침이 수없이 많으리니
크나큰 즐거움과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서게 되면
페니키아 시장에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라.
자개와 산호, 호박과 흑단
온갖 감각적인 향수를
주머니가 허락하는 한 관능적인 향수를
그리고 이집트의 여러 도시에 들러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그곳에 이르는 것이 네 궁극적인 목표이니
그러나 절대 서두르지 마라.
비록 그 길이 오래 걸리더라도
늙어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므로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땅이 보잘것없다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 없고
너는 그 가득한 경험으로 길 위에서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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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1863~1933)는 이 시에서 우리 인생의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제목의 ‘이타카’는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섬을 뜻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그린 서사시이지요.

오디세우스는 귀향 과정에서 키클롭스의 동굴과 세이렌의 유혹, 포세이돈의 분노와 맞닥뜨립니다. 우리도 인생 여정에서 수많은 괴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괴물들을 우리의 “영혼에 들이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그들이 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괴물을 마음속에 품지 않는 한 괴물과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시인은 또 여행 과정에서 만나는 즐거움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합니다. 자개와 산호, 호박과 흑단 등의 이국적인 물건과 살아 있는 경험들, 이집트 학자들에게서 듣는 고품격 강의까지. 그러면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며 충분히 맛보라고 권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비록 나이가 들고 빈손으로 닿더라도 그 여정에서 얻은 경험, 지혜, 지식 덕분에 우리는 충분히 풍요롭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사에서도 ‘이타카의 정신’은 자주 빛납니다. 단테의 『신곡』은 천국에 ‘도착’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옥과 연옥을 통과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어둠을 직면하지 않고서는 빛의 세계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위대한 서사로 보여 주지요. 목적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만, 그곳에 이르는 데 필요한 문장은 수백 장에 달합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도착’은 짧고 ‘여정’은 길지요. 그 오랜 통과의 시간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듭니다.

화가 클로드 모네는 한 번의 완벽한 풍경을 얻기 위해 붓을 든 것이 아니라 같은 풍경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같은 대상을 수십 번 그렸습니다. 그의 ‘수련’ 연작이 보여주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시간’이지요. 목표가 한 장의 그림이었다면 연작은 필요 없었을 겁니다. 예술은 결승선이 아니라 반복되는 관찰의 축적이라는 것을 모네는 증명했습니다. 눈과 마음이 매일 조금씩 새로워지는 것이야말로 긴 여정이 주는 선물입니다.

베토벤은 어땠을까요. 청력을 잃어가던 작곡가에게 ‘완벽한 연주’나 ‘대중의 갈채’는 더 이상 분명한 목표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바로 그 절망의 시간 속에서 후기의 명작들이 나왔습니다.

긴 여정은 ‘예상 밖의 나’를 발견하게 합니다. 목표는 지금의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만들어지지만, 여정은 내가 모르는 나를 새롭게 끌어냅니다.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 예기치 않은 실패, 우연한 도움, 뜻밖의 질문이 나를 성장하게 하지요. 이런 것들은 목표를 달성한다고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긴 시간을 걸어야만 몸에 배는 지혜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현자’로 거듭납니다.

“너는 그 가득한 경험으로 길 위에서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리라.”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시장’과 ‘향수’가 나오는 부분입니다. “페니키아 시장에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라(…)/ 온갖 감각적인 향수를(…)/ 그리고 이집트의 여러 도시에 들러/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목적지로 곧장 달려가는 사람은 시장에서 멈추지 못합니다. 향수를 맡을 시간도, 낯선 도시의 현자에게 질문할 여유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성급한 성취가 아니라 여유로운 감각과 배움이 여정의 진짜 부(富)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목표를 향해 뛰어가느라 정작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취가 인생의 연료라면 감각은 인생의 향기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실패가 무서워서 빨리 결론을 얻고 싶고, 불안해서 빨리 확정하고 싶고, 비교가 괴로워 남보다 먼저 도착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다 보면 ‘시장’을 지나치고 ‘현자’를 만나지 못하고 ‘향수’도 놓치게 됩니다. 빨리 도착할수록 풍요로워질 기회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지요.

정신의학계에서도 이 같은 고민을 오랫동안 공유해 왔습니다. 세계적인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권하는 ‘마음 처방전’ 역시 ‘이타카’와 닮았습니다. 이들의 지침을 7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생을 단지 어떤 ‘목표’로만 보지 말고 하나의 ‘여정’으로 바라보라. 오감을 활용하라. 시각적 아름다움, 색채, 보석, 향기에 민감해져라.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마음 자체를 즐거움으로 가는 길로 삼아라. 인생이 많은 선물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단순히 소유의 관점으로만 보지 마라. 비록 목표(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물질적으로는 가난할지라도, 그 여정에서 겪은 경험과 모험 덕분에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

2. 삶이 주는 것의 많고 적음은 당신이 삶에 무엇을 가져다 주느냐에 비례한다.

3. 내면의 악마들을 늘 의식하라. 그것들은 길 위에서 마주치는 괴물들보다 더 해롭고, 더 극복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때로는 우리 내면의 괴물들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4. 목표를 단지 성취 여부로만 보지 말고, 그 목표가 당신에게 어떤 기회를 열어주었는지도 함께 보라. 예컨대 그 목표 덕에 만난 친구와 여행 같은 것들 말이다.

5. 서두르지 말라. 급히 지나가는 만남, 허겁지겁 먹는 음식, 너무 바쁜 탓에 늘 중간에 끊기는 대화들은 이타카로 향하는 여정 자체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한다.

6. 그렇다고 길가의 쾌락들에 너무 산만하게 휘둘리지도 말라. “이타카를 늘 마음에 간직하라.” 어떤 목표이든 좋다. 친밀한 관계, 눈부신 경력, 당신의 예술, 가족, 인류를 돕는 어떤 발견…. 여정을 즐기되 당신에게 중요한 그 목표들을 언제나 시야의 중심에 두어라.

7. 자신을 잘 돌보라. 카바피가 말하듯이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오늘날에는 장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건강을 돌보는 일 자체를 즐기고 좋은 건강이 주는 보상을 누려라.

그러니 오늘도 이타카를 마음에 두되 절대로 서두르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이 오랜 여정이 되고, 그 길이 흥미로운 모험과 새로운 발견으로 빛나며, 우리 모두의 인생이 더욱 지혜롭고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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