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창업 등 자립·자활 역량 강화 및 심리상담 등을 통해 …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안착을 지원하고,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탈북민’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 지난해 12월 19일 통일부에서 낸 보도자료 하나가 우리말 용어 사용을 둘러싸고 논란을 일으켰다. 그동안 써오던 ‘탈북민’이란 단어를 바꾸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이어 세밑을 하루 앞두고 구체적으로 ‘탈북민’ 대신 ‘북향민(北鄕民)’이란 말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휴전 후 북한 괴뢰군에서 탈출한 의거 귀순용사 가운데 미혼자 60명의 합동결혼식이 오는 27일 국민회당에서 거행된다. (하략)” 1962년 3월 20일 자에서 한 신문이 자유를 찾아 월남한 ‘귀순용사’들의 합동결혼식 소식을 전했다. 이 말은 한국전쟁 이후 쓰이기 시작해 1980년대까지 언론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특히 1983년 미그기를 몰고 온 이웅평 대위의 귀순 사건으로 ‘귀순용사’란 말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했다.
‘귀순(歸順)’은 사전에서 “적이었던 사람이 돌아서서 복종하거나 순종함”으로 정의한다. 1957년 완간된 <조선말큰사전>에 이 말이 표제어로 올라 있으니 대략 한국전쟁 이후 이 말이 꽤 사용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용사(勇士)’는 말 그대로 용감한 병사다. 그러니 ‘귀순용사’는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군인을 가리키던 말이다. 과거 냉전기에 쓰이던, 이념적 대립의 유산이었다. 하지만 ‘귀순용사’는 단어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귀순자’ ‘귀순병’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귀순용사 대신 탈북한 사람이란 뜻을 담은 ‘탈북자’가 널리 쓰였다.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북한이탈주민’이 공식 용어로 등장했다. 이 ‘북한이탈’을 줄인 게 ‘탈북’이다. 그러니 ‘탈북민’은 곧 ‘북한이탈주민’인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탈북자’가 ‘탈북민’으로 교체됐는데, 이는 ‘-자(者)’보다 ‘-민(民)’을 더 대접하는 듯한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말 변천의 역사에서 이미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면서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바꾼 게 그런 사례다. 이어 ‘당선자→당선인’ ‘노숙자→노숙인’ 등도 다 같은 연장선에서 이뤄진 언어적 변화다.
최근 논란이 된 ‘북향민’을 정부는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북향민(北鄕民)’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한자 의식도 흐려져가는 판에 이를 그렇게 해석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향할 향(向)’ 자를 써서 ‘북한을 향한다’는 엉뚱한 의미의 ‘북향민(北向民)’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 남향이니 북향이니 하는 말이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탈북민연합회에서 반발하는 까닭도 그래서다. ‘북향민’의 등장은 강요된 우리말 순화가 언중 사이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새터민’의 실패를 돌아볼 때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