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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중앙은행 총재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력을 받는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지하는 가운데 일본은행은 연대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미·일 양국 정부와 마찰을 최대한 피하고 싶다는 게 속내라는 분석이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물가 안정에 필수로 여겨지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둘러싸고, 일본은행의 미묘한 입장이 부각되고 있다. 일본은행 간부들 사이에선 “다른 중앙은행 얘기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 “독립성이 물가 안정에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에 중앙은행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은행 내 다른 의견도 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중앙은행 독립성을 위협한다. 일본은행 총재는 문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은행 홍보실은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며 공동 성명에 추가로 참여할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답하지 않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 주요 중앙은행 총재들은 13일 미국 사법 당국의 형사 수사를 받는 파월 의장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파월 의장이 이번 수사에 대해 대폭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압력이라고 주장한 가운데 그에게 동조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성명에는 15일 기준 유럽에선 ECB를 비롯해 영국,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총재 등이 이름을 올렸다. 미주에선 캐나다와 브라질, 아시아에선 한국, 인도네시아 등이 참여했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더해 모두 10여개 국가·지역 중앙은행이 힘을 보탰다.
그러나 서명자 명단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없었다. 니혼게이자이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자국 외 정책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 중앙은행 세계에서 이번 공동 성명이 매우 이례적인 조치인 것은 분명하다”며 “일본은행이 원칙론을 관철했다고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행의 대응에는 미국과 일본 정부에 대한 배려도 엿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가운데, 파월 의장 지지로 간접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형태가 되는 것은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 수출 기업에 유리한 엔저를 문제 삼으며, 엔저를 시정할 것을 요구해 왔다. 12일 미·일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일본 측에 “건전한 금융정책 수립”을 촉구했다. 만약 미국의 불신을 사면 일본은행에 추가 구두 개입을 초래하거나 일본 정부가 환율 개입에 나설 때 미국 측의 이해를 얻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일본은행을 향한 다른 중앙은행의 시선은 곱지 않다. ECB 내에선 “왜 일본은행은 성명에 합류하지 않았냐”는 의문의 목소리가 나온다. ECB 측은 일본은행에 대규모 금융완화를 압박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일본은행이 어떤 거리감을 유지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국 내 ‘동업자’가 없는 각국 중앙은행은 긴밀히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일본은행이 당장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의 독립성도 확고하지 않다는 시각이 시장에서 강해지면 엔화 약세와 장기 금리 상승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일본은행 심의위원을 지낸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은 정치에 상당히 배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사서 다카이치 총리가 비판받으면 일본은행 책임이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예상대로지만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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