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하 직원들의 보직을 부당하게 강등시키고 특정인 채용 과정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등 ‘인사권 남용’으로 직장 내 괴롭힘 판정을 받은 그룹장이라 하더라도, 직급을 3단계나 강등시킨 보직 변경을 한 것은 과도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연봉을 2억 원에서 6000만 원으로 70% 삭감하고 환경미화 업무까지 맡긴 회사의 처분은 근로계약의 본질을 뒤흔들어 인사권의 재량 범위를 벗어났다 판단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강재원)는 최근 A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인사명령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하고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의 발단은 ‘인사 총괄’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인사·조직문화 담당 그룹장 D씨의 행보였다. D씨는 2016년 이 회사에 입사해 실장으로 일하다 2021년 1월 퇴사했지만, 불과 10개월 후 회사의 제안에 따라 연봉 2억 원과 1년 근무에 대한 사이닝 보너스 1억 원을 받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5월부터 D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신고가 쏟아진 것. 외부 감사 결과 그는 그룹 소속 직원들에게 부당한 '보직 강등'을 남발했고, 직원 채용 과정에서 관리 부실을 저지르는가 하면, 부당한 조직 변경을 강행하는 등 권한을 남용했다. 또 특정 직원에 대한 지원을 강요하며 직원들 간 갈등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기도 했다. 외부 법무법인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결론 냈다.
결국 회사는 D씨에게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진짜 ‘복수’는 복직 후 시작됐다. 조직 문화 담당이 조직을 망가뜨린 것에 분노한 회사는 복직한 D씨를 그룹장에서 3단계 아래인 ‘매니저’로 강등시키고, 인사팀이 아닌 총무팀으로 발령을 냈다. D씨의 자리는 D씨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피해 직원을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D씨의 처우도 처참하게 깎였다. 회사는 연봉을 2억 원에서 6000만 원으로 삭감하는 합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고, D씨의 거절에도 강등된 처우를 적용했다. 인사 총괄이었던 그에게 맡겨진 업무는 ‘사무실 환경미화’, 즉 청소 업무였다. 한때 인사를 주무르던 실세 임원에서 전락한 셈이다. D는 정직처분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하자, 결국 "보직해임과 총무팀 배치 인사 발령이 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노동위가 해당 구제신청을 인용하자 회사가 노동위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D씨의 행위가 괴롭힘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직장내 괴롭힘 피해 직원이 해당 그룹에서 여전히 근무 중이고, 괴롭힘이 확인된 사람을 상위 책임자 지위에 두는 것은 운영상 차질이 예상된다”며 보직 변경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다만 인사권을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은 급여 삭감 등 경제적 불이익 뿐만 아니라 직무 내용 변경에 따른 업무상 어려움이나 강등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이 모두 포함된다"며 "인사명령으로 D의 생활상 불이익이 근로자가 통상적으로 감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그 직급이 그룹장에서 매니저로 3단계 강등됐는데, 이는 전례 없고 이례적"이라며 "매니저 직급 연봉 4000만 원보다 많은 6000만 원을 D의 연봉으로 정했다지만 삭감 수준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D가 인사총괄 담당 그룹장으로 영입 제안을 받은 점을 비춰보면, 환경미화 업무 등 현재 D가 담당하는 업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상급자의 감독을 받게하는 방법 등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총무 담당으로 배치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밖에 회사가 인사 발령을 알게 된 직후 ‘전화도 못 받겠다’며 충격을 호소한 D씨에게 일방적으로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지시하고 성실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대처는 필요하지만, 그 방식이 '사회통념상 이례적'인 경우 되레 회사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괴롭힘 가해자라 할지라도 징계는 이미 정직 등으로 마무리된 것이므로, 복직 후 인사명령은 조직의 효율적 운영과 피해자 격리라는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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