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의 샹들리에가 천장으로 솟아오르며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럽의 귀족적 서사와 고전적 화성으로 가득 찬 이 오페라의 성전(聖殿)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바닷가 마을의 삶이 재즈의 화성으로 울려 퍼진다는 사실은 그 이질감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준다. 조지 거슈윈은 ‘포기와 베스’를 통해 서구의 클래식 전통에 블루스 기반의 흑인적 감성을 이질감 없이 담아냄으로써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로컬리티와 동시대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서머타임(Summertime)’을 비롯해 재즈사에 빛나는 명곡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메트에서 공연 중인 ‘포기와 베스’는 내용 면에서도 가장 미국적인 작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개츠비’가 상류층의 허무와 이중성 속에서 무너져가는 드림을 다룬다면, ‘포기와 베스’는 장애와 빈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노래한다. 삶을 유린당하던 포기가 베스를 찾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개츠비의 화려한 파티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미국 사회를 이끌어온 다양한 군상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1935년 ‘포기와 베스’가 처음 나왔을 때 세상은 이를 오페라로 불러야 할지 뮤지컬로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이 때문에 3시간 넘는 정통 오페라지만 메트 무대에 처음 오른 것은 1985년에 이르러서였다. 당시에도 유럽 전통을 고수하던 보수적인 메트가 미국적인 오페라를 정식 레퍼토리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과 5년 만에 메트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장르적 정체성 논란이 한 이유였지만, 아울러 거슈윈의 유언에 따른 흑인 캐스팅의 이슈도 있었다. 일부 흑인 성악가 사이에서는 주요 배역인 마약중독자, 살인자, 도박꾼 같은 스테레오타입 역할에 거부감이 있었고, 작품 속 커뮤니티의 모습이 인종차별적 편견을 고착화한다는 논란도 일었다. 좀 더 현실적인 고민은 막대한 제작비 문제였다. 기존 합창단과 별도의 흑인 합창단 운영으로 부담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와 베스’는 결국 2019년 시즌 오프닝 작품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어느새 오페라계도 인종 이슈의 선입관을 버리고 인간의 보편적 고통과 신산스러운 삶 그 자체에 주목했고, 이에 부응하듯 평단과 관객의 폭발적 반응이 이어졌다. 무대 위 흑인 공동체의 처절한 삶과 이를 관조하는 화려한 객석의 대비는 여전히 아이러니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들이 노래하는 유혹과 소외, 그리고 구원은 계층을 초월해 깊은 공명을 이끌어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2014년 메트의 관객 조사 결과 평균 연령이 10여 년 만에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으로 급격히 상승해 경영진에 비상이 걸렸다. 오페라 관객은 늙어가고 신규 관객은 오지 않는다는 시그널이었다.
이에 메트가 꺼낸 반전의 카드는 혁신적인 작품을 통해 젊고 새로운 관객을 유입하는 전략이었고, ‘포기와 베스’가 선봉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포기와 베스’는 메트 역사상 최다 티켓 판매 기록을 세우며 신규 관객 비율을 20% 이상 끌어올렸고, 관객 평균 연령을 44세까지 낮췄다.
공연이 끝난 후 지하철로 향하는 젊은 관객과 리무진에 오르는 노년 관객이 뒤섞인 링컨센터 광장의 모습은 메트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90년 전 거슈윈이 악보에 새겨 넣은 블루노트의 음계는 이렇듯 여전히 생생한 유효성을 발휘하며 관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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