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훈련’ 중심에서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낸드플래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AI가 추론을 잘하려면 데이터를 빨리 읽고 쓰는 D램뿐 아니라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낸드도 많이 필요해서다. 엔비디아가 최근 차세대 AI 가속기에 낸드 사용량을 최대 열 배 늘린다고 발표한 게 수요에 불을 붙였다.
1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 샌디스크는 올해 1분기 고용량 낸드 묶음인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가격을 작년 4분기보다 두 배 올린다고 대형 고객사에 통보했다. 시장 예상(30~40%)을 훨씬 뛰어넘은 인상폭이다. 이에 따라 일반 소비자가 구입하는 현물시장 가격은 전 분기 대비 250%가량 폭등했다. 사재기 수요가 몰려서다.
글로벌 낸드업계 5위인 샌디스크(작년 3분기 점유율 12.3%)가 대형 고객사에 100% 인상을 통보한 만큼 삼성전자(점유율 32.3%), SK하이닉스(19%), 키옥시아(15.3%), 마이크론(13%) 등 ‘빅4’도 비슷한 폭의 가격 인상에 나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안 그래도 AI 붐에 힘입어 오름세를 탄 SSD 가격에 불을 지른 것은 엔비디아다. 최근 새로운 메모리 시스템인 ‘블루필드-4’를 차세대 AI 가속기인 ‘베라 루빈’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블루필드-4에 들어가는 SSD는 랙당 9.216테라바이트로, 현재 주력 AI 가속기인 ‘블랙웰’에 적용되는 용량의 최대 열 배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베라 루빈에 들어가는 낸드 용량은 스마트폰 1억5000만 대에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라며 “메모리 슈퍼 호황이 D램에 이어 낸드로 확산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생산업체 많아 수익성 나빴지만 '추론용 AI' 시장 열려 수요 폭발
‘미운 오리 새끼’였던 낸드 시장이 슈퍼호황 국면에 들어갔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큰손’ 엔비디아가 낸드의 새로운 구매자로 등장하면서 전 세계 수요의 10%를 쓸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와서다. D램에 이어 낸드도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장기화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낸드 시장이 들썩이는 건 새로운 수요가 인공지능(AI) 시장에서 생겨나서다. 16일 씨티증권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양산하는 차세대 AI가속기 ‘베라 루빈’에 들어가는 SSD 용량은 1152테라바이트(TB)로 기존 제품인 ‘블랙웰’의 열 배 이상 많다. 베라 루빈의 올해 출하량이 3만 대, 내년 10만 대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2026년 3460만TB, 2027년엔 1억1520만TB의 신규 수요가 생기는 셈이다. 이는 올해 전체 글로벌 낸드 수요의 2.6%, 내년 전체 수요의 9.3%에 이른다.
엔비디아는 블랙웰에 데이터 저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SSD만 넣었다. 엔비디아가 SSD 탑재량을 대폭 늘린 건 기존 고대역폭메모리(HBM)로는 AI를 빠르게 구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사용자와 대화를 오래 주고받으면 ‘KV 캐시’로 불리는 ‘이미 읽은 내용’을 메모장(HBM)에 저장해야 한다.
그런데 추론 과정에서 KV 캐시가 많이 쌓이면 HBM에 과부하가 생기고 AI 서버 전체가 느려진다. 급증하는 KV 캐시를 쌓기 위해 대용량 저장장치인 SSD가 필요해진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AI가 ‘저장장치 혁명’을 촉발할 것”이라고 설명한 배경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증설을 머뭇거리는 것도 공급 부족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은 낸드 생산능력을 확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 낸드 불황을 겪은 제조사들은 높은 수요가 꾸준히 유지돼야 증설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AI 데이터센터가 부른 낸드 공급 부족이 스마트폰, PC 등 정보기술(IT) 시장으로 확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마트폰 한 대에는 128~512GB(기가바이트) 낸드가 들어가는데, 서버용 SSD에는 이보다 수십 배 많은 수십TB(1TB=1000GB) 낸드가 내장된다. SSD로 생산이 몰릴 경우 일반 낸드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맥킨지컨설팅에 따르면 기업용 SSD 시장 규모는 2024년 181EB(엑사바이트·1EB는 10억GB)에서 2030년 1078EB로 여섯 배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AI 추론용 규모가 447EB로 41%를 차지한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적 수요 증가로 공급 부족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의명/황정수/김채연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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