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자동차 관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사상 최대인 720억 달러(약 106조 원) 수출 실적을 달성한 한국 자동차산업이 올해도 친환경차를 앞세워 기록 경신에 도전한다. 한국의 자동차 수출액은 2023년 709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2024년 708억 달러로 소폭 감소했지만, 지난해 반등에 성공하면서 3년 연속 7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수출은 최대 시장인 미국의 25% 고율 관세(현재 15%) 부과로 직격탄을 맞았다.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01억5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3.2% 줄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친환경차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아시아 국가에 중고차 수출이 늘면서 전체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유럽연합(EU) 자동차 수출액은 96억8000만 달러로 20.1% 늘었고, 기타 유럽(30.5%)과 아시아(31.9%)로의 수출도 급증했다. 하이브리드카가 전년보다 30.1% 늘어난 역대 최대 수출(148억 달러)을 달성하면서 친환경차 수출액은 258억 달러로 11% 확대됐다.

국내 전기차 생산 확대
올해는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신공장을 앞세워 수출 확대를 노린다. 지난해 11월 준공식을 치른 경기도 화성의 기아 ‘이보(EVO) 플랜트 이스트’는 국내 첫 목적 기반 차량(PBV) PV5로 수출길을 연다.
PV5는 전기차의 장점을 극대화한 다목적 차량이다. 전기차는 엔진·변속기가 없고 배터리는 차체 바닥에 깔기 때문에 그 위 공간을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 기아는 배터리를 스케이트보드 모양으로 바닥에 얇게 까는 PBV 전용 플랫폼(차량 뼈대)도 개발했다. PBV는 자율주행 기술과 결합하면 로보택시, 무인화물 운송, 움직이는 비즈니스 공간뿐 아니라 호텔과 병원 등도 구현할 수 있다. 지난해 130만 대 규모였던 글로벌 PBV 시장 규모가 2030년 2000만 대로 15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PV5는 전기차 선호도가 높고 경상용차 시장 수요가 두터운 유럽에서 승부수를 띄운다. 생산 차량의 60%를 유럽에 수출하고, 20%는 아시아·중동 시장에 팔겠다는 목표다. 올해부터는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 수출을 준비 중이다.
현대차 울산 전기차 신공장도 올 상반기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제네시스의 첫 대형 전기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GV90이 생산된다. 제네시스가 준대형급인 GV80에 이어 풀사이즈 SUV를 내놓는 것이다. GV90은 상위 트림에는 롤스로이스 등 초고가 브랜드처럼 전·후석 도어가 마주 보며 열리는 ‘코치도어’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올해 자동차 수출이 미국 관세 15% 적용 확정, 미국 입항 수수료 유예 등 대미 통상 리스크 완화와 국내 전기차 신공장 가동 효과로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275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액도 지난해(72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내수 전기차 판매량 ‘껑충’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확대와 전기차 신차 출시 효과가 맞물리면서 올해 자동차 내수 판매량도 작년보다 0.8% 늘어난 169만 대를 기록할 것으로 KAMA는 전망했다. 전기차 보조금이 중단된 미국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우려가 짙지만, 국내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21만6375대로 2024년(14만1965대)보다 52.4% 급증했다. 전기차가 전체 등록 대수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사상 첫 10%를 넘어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부터 전기차 국고 보조금에 ‘전환지원금’을 신설했다. 출고된 지 3년 이상 된 휘발유와 디젤 등 내연차를 폐차하거나 팔고 전기차를 사면 별도로 지원금을 더 준다.
지원금은 원래 받을 보조금이 500만 원을 넘으면 100만 원을 주고, 그 아래면 액수에 비례해 지급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으로 전기차를 살 때 국고 보조금이 가장 많은 현대차 아이오닉 6 롱레인지, 기아 EV6 롱레인지는 국고보조금(570만 원)을 더해 최대 670만 원까지 싸게 살 수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지방 보조금도 추가된다.
올해는 고성능 전기차는 물론 승합 전기차, 보급형 전기차까지 모델도 한층 다양해진다. 제네시스는 GV60 마그마를 출시하며 ‘고성능 럭셔리’ 시장에 진출했다. 고성능 전기차인 GV60 마그마는 최고 650마력의 출력을 내며, 멈춘 상태에서 시속 200km에 10.9초 만에 도달한다. 포르쉐나 BMW M, 벤츠의 AMG처럼 폭발적으로 달릴 수 있는 고급차를 원하는 수요를 노렸다. 기존 GV60보다 차체를 넓고 낮게 설계해 고속 주행에 적합하게 디자인했다.
기아도 고성능 버전인 GT 모델로 승부수를 띄운다. 기아는 EV 2·3·4·5·6·9 등 6개 전기차 전용 모델을 내놓으며 일찍부터 전기차 라인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기아는 상반기 중 EV3 GT, EV4 4도어 GT, EV5 GT 고성능 버전인 GT 모델을 출시한다. 내연기관 고성능차 수요를 전기차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다목적 차량(MPV) 스타리아의 전기차 모델 ‘더 뉴 스타리아 EV’를 출시한다. 스타리아급으로 분류되는 소형 전기승합차(정원 11~15인, 길이 7m 미만)는 올해 최대 1500만 원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수입 전기차도 쏟아져
프리미엄 브랜드 전기차도 대거 출사표를 던진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인공지능(AI) 기반 운영체제 ‘MB.OS 슈퍼브레인’을 탑재한 GLC, CLA의 전기차 모델을, BMW는 차세대 전동화 플랫폼 ‘노이어 클라쎄’를 적용한 첫 양산형 모델 뉴 iX3를 출시한다. 포르쉐는 카이엔 일렉트릭을, 스타는 폴스타 5를 내놓는다. 볼보도 상반기 대형 전기 SUV EX90을 내놓고, 하반기에는 전기 세단 ES90을 선보인다.
중국 자동차의 공세도 한층 거세진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 1위에 오른 비야디(BYD)는 올해 2000만 원대 보급형 전기차 돌핀을 내세운다. 비야디는 한국 진출 첫해인 지난해 6000대 이상을 판매하며 수입차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지리자동차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올 상반기 국내 판매에 들어간다. 한국 시장 판매·서비스 담당 딜러사 4곳과 계약을 마쳤다. 첫 투입 모델은 중형 전기 SUV 7X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시장을 주도해온 테슬라는 가격 인하 카드를 꺼냈다. 테슬라는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중형 전기 세단 모델 3(퍼포먼스 AWD)의 가격을 940만 원(6939만 원→5999만 원), 중형 전기 SUV 모델Y(프리미엄 롱레인지)를 315만 원(6314만 원→5999만 원) 내리며 점유율 끌어올리기에 나섰다. 테슬라는 지난해 5만9916대를 판매해 2024년(2만9750대)보다 판매량이 2배 이상 늘었다.

김보형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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