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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 안 가신다고요?…요즘 뜨는 '신개념 어르신 주택' [프리미엄 콘텐츠-집 100세 시대]

입력 2026-01-22 07:00   수정 2026-01-22 07:04



나이가 많다고 다 같은 고령자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해 많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기가 왕성해 활동적으로 생활하는 ‘액티브 시니어’도 있다. 독립적인 생활을 원하지만, 어느 정도 돌봄을 받고 싶은 노인도 있다. 그 중간 지대 고령자를 위한 주거 모델로 최근 한국에서도 ‘어시스트 리빙’이란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선 보편화된 고령자 주거 서비스다.

길혜민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부교수는 논문 ‘어시스트 리빙 기반 고령자 주거 서비스 도입 방안 연구’에서 “국내 고령자 주거복지 정책은 요양시설, 노인복지주택, 공공임대주택 등 제한적인 범주에 머물러 있다”며 “자립성 있는 중·경도 노인의 다양한 생활 욕구를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고령자가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지원을 적시에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하는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고령자를 위한 주거 시설로는 공공임대주택, 고령자복지주택, 장기요양시설, 민간 실버타운 등이 있다. 고령자복지주택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해 공급하는 고령자 전용 임대주택이다. 경사로를 만들고 턱을 낮추는 등의 무장애 설계(Barrier-Free Design)와 안전시설 등을 갖춘 물리적 공간 제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생활 지원이나 돌봄 서비스 같은 복지 서비스는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 입주자가 필요시 지역 복지기관을 통해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받아야 한다.

장기요양시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중증 고령자에게 의료, 간병(병간호), 생활 지원을 제공한다. 다만 자립할 수 있는 고령자에게는 과도한 보호, 비용 부담, 사회적 고립이 문제가 된다. 기능 수준이 중간 정도인 고령자는 제도 내에서 포섭되지 못하는 구조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민간 실버타운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건강·문화·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형 고령자 주거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입주 비용, 공공성 부족, 서비스 품질의 편차 등으로 인해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보편적 복지 모델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실버타운은 법적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어 운영 방식, 서비스 수준, 인력 배치 등이 자율에 맡겨져 있어 시설 간 편차도 크다.

이에 따라 최근 국내에서도 어시스트 리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고령자 주거 모델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고령자의 독립성과 사생활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필수적인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율성을 잃지 않되, 필요할 때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거 서비스’라는 점에서 기존 시설과 구별된다.

어시스트 리빙은 크게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물리적 주거 공간의 독립성이다. 대부분의 어시스트 리빙 시설은 단독 방, 전용 욕실, 소형 주방 등을 포함한 개별 공간을 제공한다. 둘째,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 통합 제공이다. 식사, 세탁, 위생 관리, 보안, 응급 대응, 여가 활동 등이며, 고령자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한다. 셋째는 병원 연계 의료 서비스와 공동체 참여 활동이다.

요양시설에 들어갈 만큼은 아니지만, 인지·신체 능력이 점점 저하되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유연한 서비스 확대가 요구된다. 예컨대 입주자가 경도 장애 상태일 때는 기본 생활 지원만 제공하고,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방문 강호나 전문 간병을 단계적으로 추가하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어시스트 리빙의 핵심은 단순한 ‘시설 제공’이 아니라, 고령자의 생애 주기에 따라 제공하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에 있다.

어시스트 리빙은 1980년대 미국에서 민간 주도로 시작됐다. 이후 일본, 독일, 스웨덴 등에서 각 국가의 복지 환경과 법 제도에 맞게 진화했다. 일본에선 ‘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사코주)이라고 부른다. 2021년 일본 국토교통성과 후생노동성이 공동 발표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사코주 입주자는 동일 연령대 일반 주택 거주자보다 장기요양시설 입소율이 낮고, 기능 저하 속도가 느리며, 지역사회 활동 참여 비율이 높았다.

어시스트 리빙을 처음 시도한 미국에선 각 주에서 자체적인 인허가 및 규제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시설은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비영리 단체인 ‘그린 하우스 프로젝트’ 운영하는 어시스트 리빙은 10~12명의 소규모 그룹이 한 집을 구성한다. 거주자는 각자의 방과 욕실을 보유하지만, 식사와 일상생활은 공동으로 한다. 간호사와 돌봄 제공자는 일상적인 가족 구성원처럼 생활하는데, 단순한 간병인이 아닌 정서적·심리적 동반자 역할까지 수행한다.

미국의 어시스트 리빙은 시설보다 자율성, 서비스 선택권, 통합 케어 체계를 중시한다. 공공은 규제와 품질 관리 역할에 집중하고, 민간은 시설 운영과 서비스 혁신을 주도한다.

일본은 2011년 ‘고령자 주거 안정 확보법’ 개정을 통해 사코주를 도입했다. 우선 민간 건설업체가 고령자 전용 임대주택을 지은 후 복지법인이나 간호 기관을 통해 입주자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입주자는 독립된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상주 인력으로부터 안부 확인, 생활 상담, 응급 호출 등의 기본 지원을 받는다. 간호·식사·재활 등 추가 서비스는 외부 전문기관과 계약해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비스 표준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정부는 보조금 지원, 세제 감면, 건설자금 융자 등을 통해 민간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길 교수는 “한국의 고령자 주거복지 제도는 기능별로 분절되어 있어 고령자의 삶의 질, 자율성, 정서적 안정, 사회적 참여 등을 포괄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어시스트 리빙은 이러한 정책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임에도, 그 개념조차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만큼 조속한 법적 정의 마련과 통합 운영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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