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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멈춘 반도체 혈맥…"탈한국 부추길 판" 무서운 경고

입력 2026-01-20 15:03   수정 2026-01-20 15:13

국회 싱크탱크인 국회미래연구원이 한국전력의 소매 독점을 깨야 산업경쟁력이 살아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한전 소매 독점과 정치적 요금 결정 구조가 국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전력요금 결정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주장을 담아 큰 파장이 예상된다. 그동안 표심을 의식해 정치권과 정부가 전기요금 현실화를 가로막은 주체라는 점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 방안을 담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전력가격 억제가 기업 '脫한국' 불렀다
국회미래연구원은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력 소매시장 개편방향 연구'를 공개했다. 단순한 정책 제언을 넘어 20년간 유지된 온 한국전력 중심의 전력 체계를 해체해야 한다는 제언을 담았다.

보고서는 "2025년말 기준 한전 총부채는 200조원을 넘어섰고, 매일 120억원의 이자를 갚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전 예산 상당 부분이 '전기요금 인상 억제'라는 정치적 결정의 뒷수습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현재 전력 시장을 '총제적 난국'이라고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을 때, 세계 주요국은 시장 신호를 통해 전력 수요를 조절했으나, 한국은 '물가 안정'과 '서민 부담'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가 가격을 통제했고, 그 결과 기형적인 구조로 한전의 재무적 완충 능력이 파괴됐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첨단 산업의 혈맥인 송·배전망 투자가 멈춰 섰다는 점이라는 분석이다. '비대칭적 요금 인상'도 큰 문제라고 짚었다. 정치권이 저항이 심한 주택용 요금 대신 산업용 요금만 최근 3년간 60% 이상 올려서다. 보고서는 "이러한 땜질식 처방이 제조업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고 기업의 투자 예측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려 탈(脫)한국을 부추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지금 이 시점'에 소매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절박한 이유로 '산업 구조의 대전환'을 꼽았다. 생성형 AI와 초미세 반도체 공정 시대에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전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전 독점 체계는 전 국민에게 동일한 품질의 전기를 싸게 공급하는 '보편적 복지'에는 최적화되어 있으나, 첨단 기업들은 이런 전기를 원하지 않는 모순에 처해 있다는 진단이다.

보고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첨단 대기업들이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충족하는 '녹색 전력' △24시간 끊김 없는 고품질의 '안정적 전력' △탄력적인 요금제와 결합된 '예측 가능한 전력' 세 가지를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전이 구매와 판매를 모두 독점하는 현 구조에서는 민간 PPA(직접구매계약)가 활성화되기 어렵고, 기업들의 RE100 대응에도 제약이 크다"고 진단했다. 결과적으로 한전의 독점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국회미래연구원의 분석이다.
정치는 빠져라
보고서가 제시하는 해법은 전력 시장에서 '정치'를 걷어내고 '시장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에너지 금융통화위원회' 역할을 하는 독립적 규제기구(가칭 전력감독원)의 설립이다. 현재 산업통상부와 재정경제부가 쥔 전기요금 결정권을 전문가 집단으로 넘기자는 주장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고 금리를 결정하듯, 전기요금도 원가와 수급 상황에 따라 독립적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한국 정부에 수년째 권고해 온 사항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소매시장을 단계적으로 개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즉, 한전이 독점하는 전력 판매 시장을 민간에 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대규모 산업용 소비자부터 원하는 기업이 '전기 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단계적으로 일반 가정용까지 확대해 통신과 전기가 결합된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망 중립성을 통한 공정 경쟁'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심판이 선수로 뛰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이다. 한전이 전기를 팔면서 동시에 전기가 흐르는 길(송배전망)까지 관리하는 지금 구조에선 한전과 민간 전력 사업자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시장 개방을 추진할 때 따라붙는 민영화와 요금폭탄 주장에 대해서도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도혁신'이라고 주장했다. 일본과 EU 등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한다는 의미다. 가령 2022년 에너지 위기 당시 일본에서 발생한 '전력 난민' 사태(민간 사업자 파산으로 인한 공급 중단)를 방지하려면, 민간 사업자가 파산하더라도 한전이 전기를 공급하는 '최종공급자 제도'를 반드시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는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보편적 복지 예산을 통해 별도로 집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를 '전기요금 체계 정상화'라며 "단순하게 값싼 전기 시대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기능 회복과 공정한 경쟁 기반 조성, 합리적 소비, 투자 활성화, 탄소중립 이행, 전력공급 안정성 제고라는 보다 지속가능한 전력산업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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