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학가에서 이공계 출신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재정 다변화와 국제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연구성과와 취업지표를 끌어올릴 수 있는 이공계 역량을 중시하는 흐름이 총장 인선에도 반영되는 모습이다.
○'외국어 특성화' 외대마저 자연대 출신
20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10개 대학(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의 2026학년도 이공계 출신 총장은 총 7명으로 집계됐다. 인문사회계열 출신 총장은 고려대 김동원 총장(경영학), 서울대 유홍림 총장(정치학), 한양대 이기정 총장(영어영문학) 등 3명에 그쳤다. 2016학년도에는 이공계 출신 총장이 3명, 인문사회계열 출신이 7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총장 인선의 구도가 정반대로 뒤바뀐 셈이다.특히 교육계의 이목이 쏠린 인선은 한국외대의 사례다. 오는 3월 취임하는 강기훈 신임 총장의 전공은 통계학으로, 그는 자연과학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외국어 특성화’ 대학인 한국외대마저 자연대 출신 총장을 선임하면서 대학가에서는 이공계 강화가 대학의 생존 전략으로 굳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연계 출신 교수가 외대의 총장으로 선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직전 총장인 박정운 총장의 전공은 언어학이었다.
유사한 흐름은 다른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는 3월 취임하는 박세현 중앙대 신임 총장은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했으며, 지난해 취임한 이화여대 이향숙 총장은 수학과 출신이다. 이 총장은 이화여대 역사상 첫 자연과학계열 출신 총장이다.
○이공계 경쟁력이 대학 경쟁력 좌우
대학들이 이공계 출신 총장을 선임하는 배경으로는 정부 재정지원과 대학평가가 연구·산학 성과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의 영향이다. 교육부가 그간 추진해온 대규모 대학 재정지원 사업인 PRIME, LINC, BK21 등은 산학협력과 연구역량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자연스럽게 이공계 경쟁력 강화와 맞물려 왔다.한 대학 본부 관계자는 “수천억 원 단위의 예산이 걸린 이런 사업들은 표면적으로는 전 계열에 열려 있었지만, 실제로는 평가지표가 연구 성과와 산학협력, 대형 과제 수행역량에 더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공계 출신 리더가 있으면 연구 인프라나 과제 기획·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대학평가 지표 역시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 유치와 국제 평판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주요 평가기관들이 연구 비중을 크게 두면서 대학들이 ‘연구 중심 전략’에 더욱 민감해졌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 QS가 발표하는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연구·개발(R&D) 관련 지표의 비중이 50%에 달한다. 이어 취업 성과가 20%, 교육환경 10%, 국제화 15%, 지속가능성 5% 등을 차지한다. THE가 발표하는 세계대학평가에서도 연구 비중이 크다. 연구환경이 29%, 연구의 질이 30%로, 두 지표를 합치면 전체 평가의 59%가 연구와 직접 관련된다.
○인문사회 축소 우려도 확산
이공계 강화 흐름이 뚜렷해질수록 인문사회계열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소재 대학에서 통폐합된 인문·사회 계열 학과는 2022년 87개, 2023년 53개, 2024년 90개, 2025년 100개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한국외대는 2022년 외국어계열 유사학과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학제개편안을 승인하며 용인 글로벌캠퍼스의 통번역·국제지역 계열 12개 학과를 통폐합했다. 덕성여대는 지난해부터 독어독문학과·불어불문학과에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사실상 학과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한 이공계 출신 총장은 “재정지원 기준과 평가지표가 연구·산학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에서는 대학 운영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정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공계 경쟁력을 끌어올리면서도 인문사회 기반을 유지해 학문 간 균형을 지키는 것이 주요 종합대학들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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