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수입 우유가 국내 시장에 밀려오고 있다. 당장은 고환율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국내 우유 시장을 잠식하는 건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부터 미국산 우유의 관세는 기존 2.4%에서 0%로 내려갔다. 유럽산 우유 관세도 기존 4.8~2.5%에서 2.5~0%로 낮아졌는데 오는 7월부터는 전면 철폐된다. 한때 평균 36%에 달했던 유제품 관세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러면서 가격경쟁력은 이미 수입 멸균 우유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폴란드산 멸균우유 '믈레코비타 3.5%(1L)'는 대형마트 온라인몰에서 1900~1950원에 판매되고 있다. 국내산 냉장우유 '서울우유 나100%(1L)'가 2970~2990원에 팔리는 것과 비교하면 약 35% 저렴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관세가 철폐되면 유럽산 우유 가격이 L당 40원가량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멸균우유는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소비기한이 1년에 달해 재고 관리 부담도 적다. 냉장우유와의 영양소 차이도 크지 않다. 일반 냉장 흰우유는 130~150도에서 0.5~5초간 살균하는 초고온살균법(UHT)으로 처리하는데 멸균 우유도 이와 같은 초고온살균법을 적용한다. 단 열처리 온도는 냉장우유보다 높다.
국내 유업체 관계자는 "모든 업체가 멸균 우유 열처리 온도와 시간은 대외비로 관리한다"면서도 "제조 과정에서 비타민B군이 감소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공정을 거치기에 냉장우유와 큰 차이가 발생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입 멸균 우유를 그대로 음용할 경우 국산 냉장 우유에 비하면 치즈 향이 난다는 평가도 있지만, 제빵이나 커피 제조에 사용하는 경우는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 때문에 개인 카페나 베이커리처럼 원가 압박이 큰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수입 멸균 우유 소비가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멸균우유 수입량은 2016년 1214t에서 2024년 4만8671t으로 8년 만에 약 40배 불어났다. 지난해 3분기 수입량도 1만7424t으로 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관세 장벽이 사라지면 수입 멸균우유의 공세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현재 국내 우유업계가 숨을 고를 수 있는 것은 고환율 영향이 크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물류비 부담이 관세 인하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해 수입 멸균우유 가격이 예상만큼 내려오지 않았다는 평가다. 실제 유통 현장에서도 "수입 우유 가격에 큰 변화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다만 환율이 안정되면 수입 멸균 우유의 가격경쟁력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유 가격에서부터 격차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원유 가격은 L당 1246원으로, 629원인 미국의 두 배 수준이다. 폴란드(744원), 호주(670원) 등 주요 수출국과 비교하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다.
저출산·고령화로 우유 소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1인당 백색시유(흰 우유) 소비량은 2021년 26.6㎏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25.3㎏으로 줄었다. 학교 급식 물량도 해마다 줄고 있는 데다 두유, 식물성 음료 등 대체재 선택지도 늘었다.
국내 우유업계는 프리미엄·기능성 우유, 성인 영양식, 식물성 음료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전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상품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소비자조사 결과에서 수입 멸균우유를 구입해본 소비자들은 그 이유로 '국산 시유보다 보관이 간편해서(60.9%)'와 '가격이 저렴해서(26.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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