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처음 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나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더 일찍 인연을 찾는다면 중학교 2학년 겨울철에 처음으로 하숙 생활할 때, 함께 하숙한 급우로부터 한 편의 시를 접하고서였다. 그 시가 바로 박목월 선생의 ‘산이 날 에워싸고’였다. 그로부터 무조건 선생의 문장이 좋았다. 좋아한다는 것은 정서적인 반응에 의한 것이라 특별한 까닭이 있을 수 없다. 한국말로 ‘그냥’이라는 말이 가장 좋은 말일 것이다. 자동적으로 나는 박목월 선생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박목월 선생의 심사를 거쳐 시인이 되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행운은 없는 일이었다. 선생은 그 뒤로 내 첫 시집의 서문을 써주셨고 결혼식 주례까지 맡아주셨다. 스스로 세 차례나 선생의 은혜를 입었노라 말을 한다. 그런 뒤로 나는 가끔 서울 용산구 원효로 4가 5번지에 있는 선생님 댁을 몇 차례 방문한 일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1973년 1월 어느 날. 서울에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거가 있었다. 나도 회원이었으므로 한 표를 행사하러 회의장에 갔다. 이사장 출마자는 조연현 선생과 김동리 선생이었다. 나는 조연현 선생에게 투표했고 개표 결과 조연현 선생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회의가 끝난 뒤 조연현 선생 측에서 저녁 식사를 겸한 축하 행사를 마련했다. 나는 한 선배의 손에 이끌려 그 행사에 참석했고 저녁밥까지 얻어먹었다. 그냥 여관으로 가고 싶었으나 나를 이끈 선배는 기왕 서울에 온 김에 박목월 선생을 뵙고 가자고 그랬다.
그도 나쁜 일이 아닌 것 같아 선배를 따라 예의 그 원효로 4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았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선생 댁에는 선착객(先着客)이 있었다. 대전에서 살던 박용래 선생과 임강빈 선생. 그 두 분은 평소 나와 친분이 있던 사이인데 내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붙들고 비아냥조로 말을 걸었다. “나태주, 너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거니?” “대전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서울 와서야 보겠네.”
그런데 그런 속내를 전혀 짐작도 못 하고 조연현 선생을 지지하여 당선시키고 그다음 행선지로 박목월 선생 댁을 택했으니 내가 많이 까막눈이고 어리석었던 것이다.
박용래, 임강빈 두 분이 하도 사납게 나를 몰아세우니까 박목월 선생이 나섰다. “나군. 나 좀 보래이.” 그러고는 당신이 기거하는 문간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의 말이 떨어졌다. “나군, 지금 어디 갔다 왔노?” 나직한 음성이지만 그것은 무겁고도 엄격한 말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팽 돌았다. 어쩌지? 내가 문인협회 이사장 선거에 나가 조연현 선생에게 투표하고 그것도 모자라 조연현 선생이 마련한 식사 자리까지 다녀왔다고 하면 선생이 뭐라고 할까? 화를 내시면 어떻게 하나? 짧은 순간이지만 오만 생각이 오갔고 침묵은 오랜 시간처럼 흘렀다.
거짓말로 둘러댈까? 아니지. 그래도 내가 열다섯 살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좋아하던 선생님인데 그 선생님 앞에 거짓말로 둘러대면 안 되지. 차라리 곧이곧대로 말씀드리고 야단이라도 맞자. 결심이 서자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네 선생님. 오늘 문인협회 이사장 선거에 나가 선거하고 조연현 선생이 주시는 저녁밥 먹고 왔습니다.”
정확하게 상세히 다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 조연현 선생에게 투표했다는 것까지 암묵적으로 말씀드린 셈이다. 그러자 선생님이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또한 긴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나가지.”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세 음절이다. “나 가 지.” 네, 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나는 선생님의 뒤를 따라 그 방에서 나왔다.
박목월 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당신의 대표작이 ‘나그네’라고 말하는 것. 그때마다 선생은 “아니래이. 나의 대표작 오늘 저녁 쓸 거래이”라고 대답하셨다는 것이다. 시인다운 말씀이다. 그리고 더욱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했다. 그 당시는 거짓말이 너무나도 흔하게 세상에 떠돌던 시절이다. 그런 선생님 앞에 내가 그날 밤 겁이 나고 두렵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잘한 일인가! 그랬기에 선생님은 그 뒤에 내가 말씀드린 두 가지 청을 암말 하지 않고 들어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이 내신 인생 시험에서 내가 어렵사리 통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 선생님은 그렇게도 인자하신 분이고 마음이 깊고도 넓은 분이셨구나. 오늘에 와 정말로 선생이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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